[사설]생각이 같은 사람만 모이면

  • 입력 2003년 1월 28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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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투박한 ‘현장 어법’은 후보 시절부터 이에 매혹되는 사람도 있고 불안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현장 분위기에 맞춰 원고에 없는 말을 하다 보면 생동감이 살아나지만 자칫 오해나 논란거리를 만들기도 한다.

노 당선자가 대구 국정토론회에서 ‘의견이 다른 사람을 정부 안에 끌어넣으라고 하는 조언에 대해 실천하기 어렵다’고 한 발언도 노무현식 수사법으로 새 정부의 개혁성을 강조한 의미로 풀이된다. 노 당선자 말대로 정부 안에 의견이 다른 사람, 이해 관계와 기반이 다른 사람을 뒤섞어 놓다 보면 손발이 맞지 않아 행정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정부 안에 생각이 같은 사람만 모일 때 생기는 집단 사고(思考)의 위험에 대해서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지향과 사고의 방법이 같은 동류(同類)의 사람들만 모여 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하다 내부 검증에 실패해 오류를 범한 사례는 현대 정치사에서 수없이 발견된다.

대통령이 견해가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겠다고 하는 마당에 행정부 관료들이 감히 다른 생각을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부 안에서 정치적 지향이 다른 사람으로 몰릴까봐 침묵을 강요당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노 당선자가 말한 토론공화국은 이뤄지기 어렵다.

미국의 강성 백악관에도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같은 매파들 옆에 콜린 파월 같은 비둘기파가 존재해 균형이 잡힌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개혁파 교수들 옆에 실무경험을 갖춘 관료 출신들이 포진함으로써 안정감을 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노 당선자와 고건 총리후보도 그동안 정치적 노선이 같거나 ‘견해가 일치’하는 부류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하기에 따라서는 개혁과 안정을 조화시키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노 당선자가 자신을 반대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전문성 있는 인사들을 발탁하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는 큰 정치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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