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제균/분권형 대통령제의 '두 얼굴'

  • 입력 2003년 1월 20일 20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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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자존심을 세웠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해 말 미국에 맞서 이라크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2단계 결의안을 관철시키자 프랑스 언론은 이렇게 치켜세웠다. 이후에도 시라크 대통령은 유럽연합(EU) 확대를 주도하는 등 국제무대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시라크 대통령의 성공은 안정된 내정을 수행해 온 장 피에르 라파랭 총리의 ‘내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게 유럽 언론의 평가다. 두 사람의 환상적인 역할 분담에 힘입어 라파랭 총리는 물론 지난해 대선 1차투표 지지율이 19%에 불과했던 시라크 대통령까지 지지율이 60%를 넘고 있다. 프랑스식 ‘분권형 대통령제’가 보여주는 ‘윈윈 게임’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대선을 겨냥한 우파 시라크 대통령과 좌파 리오넬 조스팽 총리의 정쟁으로 프랑스는 조용한 날이 없었다.

외교와 국방은 대통령이, 내정은 총리가 책임지는 분권형 대통령제의 경계도 무너졌다. 대선을 의식한 조스팽 총리는 각종 정상회담에 시라크 대통령과 함께 참석하는 어색한 모습을 연출했다. 시라크 대통령도 TV 회견 등을 통해 조스팽 총리의 내정 실패를 비난하는 등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두 사람에 대한 실망은 대선의 낮은 투표율과 극우파 장마리 르펜의 약진으로 나타났다. 대통령과 총리가 다른 정파에서 나올 수 있는 프랑스식 대통령제의 어두운 그림자다. 이 때문에 프랑스는 일부 개헌을 통해 대통령과 의회의 임기를 같도록 조정, 좌우 동거정부의 출현 가능성을 대폭 줄였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는 내년 총선 이후 프랑스식 대통령제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 도입될지 모를 프랑스식 대통령제는 위의 두 가지 중 어떤 모습이 될까.

노 당선자의 말대로 ‘정치수준’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그러나 ‘정치수준’이 높은 프랑스에서도 대통령제는 시행착오를 거쳐 손질되고 있다. 프랑스식 대통령제가 실패할 경우 국민이 치를 대가가 너무나 큰 만큼 그 명암과 허실을 성찰하는 일이 선행돼야 할 것 같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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