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용균/˝구명조끼만 있었더라도…˝

  • 입력 2003년 1월 20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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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경남 합천군 봉산면 합천호에서 발생한 소방헬기 추락사고는 인명구조가 주임무인 소방당국의 안전 불감증과 허술한 위기대처 능력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우선 호수 위로 시험비행에 나선 소방헬기에 구명장비조차 갖추지 않았다는 것은 ‘나사 풀린’ 소방행정의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합천호로 추락한 뒤 반쯤 잠긴 헬기에 탑승자 전원이 2, 3분가량 매달려 물 속에 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구명조끼만 있었더라도 기장과 부기장의 실종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생존자인 스와벡 비첵(33·헬기디자인담당)은 “구명장비가 없어 수영을 하지 못하는 탑승자는 헬기 파편을 잡고 잠시 물에 떠 있었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의 구조과정에도 ‘과학적’인 대응을 찾긴 어렵다. 대구소방본부는 헬기의 비행 예정경로 등을 검토하기보다는 휴대전화 최종 발신지 추적에만 매달렸다. 사고 발생 5시간 뒤 ‘발신지’를 알아내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이곳은 엉뚱하게도 사고지점에서 9㎞나 떨어진 곳이었다. 발신지는 휴대전화를 중계하는 기지국의 위치일 뿐 ‘실종 장소’가 아니라는 평범한 기초지식도 없었던 것. 이 지역 기지국은 반경 10㎞ 안팎의 휴대전화를 중계하기 때문에 오차가 크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고 헬기의 통신이 두절되고 귀환시간을 넘긴 오후 6시경 소방본부가 합천 현지 소방대에 사고 소식을 알리고 신속한 야간 수색을 지시했다면 생존자들을 조기에 구조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소방본부가 허둥대는 사이에 생존자들은 살을 파고드는 추위 속에 동사를 면하기 위해 필사의 생존 노력을 하면서 뜬눈으로 밤을 새워야 했다. 만약 당일 날씨가 조금 더 추웠다면 이들은 생존하지 못했을 상황이었다.

작전에 참가해 실종된 대원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전 부대원이 전력을 다하는 외국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이번의 경우는 지나친 인명 경시와 안이한 대처의 표본으로밖에 볼 수 없다. 국가나 조직에 대한 충성심은 소속 조직에 대한 신뢰에서부터 출발하는 법이다.<대구에서>

정용균기자 사회1부 cavat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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