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60대의 사랑

  • 입력 2003년 1월 16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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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지 아홉 달된 이종대-김점숙씨 커플. 데이트하다 일찍 헤어진 날은 못내 아쉬워 밤새 전화통에 매달린다. 사소한 오해로 토닥거리다 눈 녹듯 풀어지고, 식구들한테 거짓말을 하고 살짝 여행가는 것까지 여느 젊은 연인들과 다를 바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두 사람의 나이(이씨는 68세, 김씨는 56세)와 거짓말하는 대상이 부모가 아니라 자식들이라는 것. 얼마 전 KBS TV에서 방영된 ‘인간극장-프로포즈’ 얘기다. 영화 ‘죽어도 좋아’는 좀 더 진해서 상영불가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70대 부부의 긴 정사신은 어떤 청춘남녀의 사랑보다 당당하고 또 따뜻하다.

▷젊은이들은 성과 사랑이 그네들만의 것인 줄 안다. 그러나 ‘결혼과 가족-친밀함을 찾아서’를 쓴 미국의 US국제대학 로버트 로어 교수는 사랑과 관련된 모든 감정은 나이와 상관없이 몇 번이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으로 입증했다. 머리가 희어지든 빠지든 설렘과 열정, 질투와 토라짐 그리고 애인의 작은 반응에도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건 사춘기 때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거다. “다시 아이가 된 것 같았다. 내가 다시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게 로어 교수가 소개한 경험자들의 반응이다. 소설제목 ‘정은 늙지도 않아’처럼 정은 늙지 않는다. 더불어 성(性)도.

▷67세의 세계적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13일 네 번째 딸을 얻어 ‘비슷한 또래’의 많은 남성들을 경탄시켰다. 그의 비서였던 아기 엄마는 파바로티보다 서른 네 살 어리다. 미국서는 이처럼 나이 차가 많은 남녀의 결합을 ‘5월과 12월의 결혼(May-December Marriage)’이라고 한다. 특히 나이에 걸맞게 성공한 남자와 젊고 예쁜 여자의 재혼은 서로의 요구와도 맞아떨어져 실패율이 적다는 통설까지 전해진다. 공교롭게도 같은 13일, 너무나 감미로운 목소리를 지닌 추억의 팝스타 나나 무스쿠리도 오랜 연인과 재혼했다. 예순 여섯 살인 그도 지금 ‘사랑의 기쁨(Plaisir D’Amour)’을 노래하고 있을까.

▷‘인간극장’이나 ‘죽어도 좋아’를 본 적지 않은 이들이 노인의 사랑도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단, 사랑으로 모든 걸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젊은이들과 달리 노인, 특히 남자노인의 사랑엔 결정적 조건이 존재한다. 건강과 돈이다. ‘죽어도 좋아’의 할아버지처럼 “아들 하나 낳아달라”는 체력이 없으면, 파바로티만큼은 아니어도 경제적 능력이 따라 주지 않으면 사랑을 성취하기란 쉽지 않다. 여자의 경우엔? 나나 무스쿠리만큼의 매력이 필요하다고 해야 하나?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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