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반성문

  • 입력 2003년 1월 15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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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큰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죄를 뉘우치고 반성의 눈물을 흘릴 때는 누구라도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스스로 반성할 줄 아는 능력을 소유한 점이다. 사람들이 글로 남긴 반성의 기록은 무수히 많다. 세계 3대 참회록으로 꼽히는 아우구스티누스와 루소, 톨스토이의 참회록은 요즘도 널리 읽힌다. 이들의 진솔한 고백에서는 다른 문학작품에서 접하기 어려운 영혼의 향기가 묻어난다. 인류 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들도 한없이 나약한 내면을 지녔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시인 윤동주의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는 시구는 언제 읽어도 마음을 움직인다.

▷역사상 가장 눈길을 끈 반성문은 2000년 로마교황청이 발표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사과문은 유대인 박해, 십자군전쟁, 마녀사냥, 신대륙 학살 방조 등 2000년간 기독교의 뼈아픈 과오를 반성하고 있다.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중 행한 유대인 학살에 대해 ‘광신적인 나치스트들에 의해서만 자행된 일이 아니며 독일인 수백만명이 적어도 대충은 알고 있었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한 것은 과거사 반성에 인색하기 짝이 없는 일본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사실 반성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뉘우침’과 ‘회개(悔改)’ 같은 단어들이 사람들의 입에 너무 가볍게 오르내리는 요즘 세태도 문제가 있다.

▷교육부가 지난 5년간의 교육정책을 반성하는 문건을 내놓은 것은 착잡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정책 결정과 집행에서 교육공동체 구성원의 참여와 공감대가 미흡했고 잦은 장관 교체로 교육불신을 안겨주었다’는 것이다. 자존심 센 정부 기관이 반성문을 쓰는 일이 좀처럼 없었기에, 교육행정이 그동안 경직된 모습을 보였기에 자기 쇄신을 위한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이고 싶다. 교육당국이 앞으로 잘해 보겠다는 것을 매몰차게 외면하는 것도 방법은 아니다. 그래도 탐탁지 않은 것은 이번 반성이 ‘진정한 회개’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기독교 용어인 ‘회개’란 말은 ‘뉘우치고 고친다’는 뜻이다. 뉘우치는 것에 그치면 안 되며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때 회개의 진정한 의미가 성립된다. 이번 반성문이 교육부가 새 정부에 잘 보이려는 제스처는 아닐 것이다.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의 표현으로 보고 싶다.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그러나 최종적인 판단은 유보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반성이 ‘회(悔)’에 머물지, ‘개(改)’로 이어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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