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런 데 쓰라는 국정원예산인가

  • 입력 2003년 1월 10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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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김옥두 의원 부인이 지급한 아파트계약금 중 150만원이 국가정보원 계좌에서 나온 수표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 의원은 작년 설날에 ‘떡값’으로 200만원을 받았다고 했지만, 액수의 다과를 따질 계제가 아니다. 액수와 관계없이 국민이 낸 세금이 공공연히 정치인들의 떡값으로 유용되는 사회는 국정의 투명성을 논할 자격조차 없다. 그 돈을 집 사는 데까지 보태 썼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정치권의 설명대로 국회 정보위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국정원으로부터 떡값을 받는 게 오랜 관행이라면 더욱 심각하다. 상호 묵인 아래 혈세를 빼먹으면서도 죄의식조차 느끼지 않았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의원이 받은 수표와 함께 7억원이 한꺼번에 국정원 계좌에서 출금된 것으로 볼 때 떡값을 받은 사람만 수백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예산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재작년만 해도 본예산은 2440억원인데 기밀비는 3999억원이나 됐다. 그나마 기밀비는 국회심의의 사각지대에 있어 그동안에도 여러 차례 문제가 됐었다. 95년 지방선거와 96년 총선 때 1197억원의 돈을 구여권에 지원한 것처럼 정치적 용도로 빼돌려 쓴 경우가 많아 정치개입 의혹도 끊이지 않았다. 막대한 기밀비의 용처를 국정원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판이니 탈이 안 날 수 없다.

예산운용 과정에서 생기는 이자 처리도 의심스럽다. 임동원 전 국정원장은 국회에서 “연간 200억원의 이자를 국고에 반납하지 않고 써왔다”고 밝힌 적도 있다. 그러고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으니, ‘국정원 돈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까지 정치권에 나돌 정도다.

국정원의 방만한 예산운용에 대한 정밀실사가 필요하다. 특감이라도 실시해 기밀비의 씀씀이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공언한 국정원의 기능변화와 조직개편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예산실사는 마음만 먹으면 당장 할 수도 있다. 국정원 개혁은 예산 통제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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