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민의 영화속 IT세상]사람을 이어주는 테크놀로지 되길

  • 입력 2003년 1월 5일 17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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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TV에서 모처럼 괜찮은 영화를 만났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스트레이트 스토리’라는 영화다.

정말 데이비드 린치답지 않은 영화였다(데이비드 린치답다? 그의 최근작이었던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내겐 풀리지 않는 퍼즐 같았다. 나는 그 영화를 몇 번이고 되돌려보면서 끝내 줄거리를 이어나가지 못하는 나의 아둔함을 원망했었다).

73세인 앨빈 스트레이트가 형을 찾아 나선다. 형제는 사소한 오해로 몇 년 동안 서로 연락을 끊고 살았다.

앨빈은 형이 중풍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에 형에게 가려고 결심하지만 수단이 마땅찮다. 가족이라곤 언어 장애가 있는 딸이 유일하다.

심각한 노안에 기동조차 불편한 그는 운전면허증도 없다. 결국 30년도 더 된 잔디 깎는 기계를 개조해 탈 것을 만든다. 그리고 시속 5마일의 속도로 6주간의 기나긴 여정을 떠난다, 단 하나뿐인 형에게 가기 위해.

영화를 보면서 내내 훌쩍이던 나는 한참 뒤에야 그 눈물의 진정한 원인을 알게 됐다. 바로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했던 나의 가족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차로 10분 거리에 사는 나의 동생과는 얼마나 자주 만나는가? 그 눈물은 나의 나태와 무관심과 무정함에 대한 반성이었다.

최근 아버지에게서 e메일을 자주 받는다.

늘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는 내게 전화 한 통화면 되지만 굳이 편지를 쓰신다. 인터넷을 통해 만나는 당신의 글은 전화선을 타고 오는 목소리보다 느낌이 각별하다. 유년시절을 아무리 되돌려 봐도 아버지께 편지를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부자간의 새로운 방식의 의사 소통은 인터넷이라는 테크놀로지 덕분이다.

테크놀로지의 역할은 모쪼록 이런 것이어야 한다. 빠르고 편리한 것이 전부는 아니다. 느릿느릿하더라도 사람을 이어주고 사랑을 회복해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내 아버지의 e메일처럼, 영화에서 앨빈의 잔디 깎는 기계처럼.

IT칼럼니스트 redstone@kgsm.kaist.ac.kr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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