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가장 큰 관심사는 이회창(李會昌) 후보의 거취. 그는 20일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의 거취 문제에 대해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의 입장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가 그동안 “더 이상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만큼 2선으로 물러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 후보가 물러날 경우 당의 구심력은 급속히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의 카리스마와 장악력을 대체할 만한 당내 인물과 세력이 형성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구심점 상실로 인해 한나라당의 진로는 시계(視界) 제로 상태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한나라당은 내부적으로 급속한 ‘핵(核)분열’을 맞게 될 공산이 크다. 그동안 한나라당은 이 후보의 집권 가능성에 따라 계파간, 정치 성향간 이견을 봉합해 왔으나 이 같은 장악력이 사라질 경우 내부 해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게 당내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특히 당내에선 이념적 성향이 극명하게 엇갈린 여러 세력이 이 후보를 중심으로 ‘기묘한 동거(同居)’ 생활을 해 왔던 만큼 특단의 묘수가 등장하지 않는 한 제 갈 길을 찾아갈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와 함께 당내 세대교체의 물결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당선이 사실상 세대교체의 신호탄인 만큼 이를 화두(話頭)로 삼으려는 당내 개혁성향 의원들의 목소리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같은 변수는 한나라당 내 갈등의 불씨로 작용하겠지만 현재로선 당의 진로를 쉽게 예단하긴 힘들다. 다만 파장에 따라 정계개편의 도화선으로 작용해 새로운 지역당의 출현과 보혁(保革) 구도의 정립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 정권의 대야(對野) 전략이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노 당선자가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선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의 협조가 필수적인 만큼 평화적 공조 전략을 채택할 것인지, 아니면 김대중(金大中) 정권처럼 ‘의원 빼내기’의 강수(强手)로 나설 것인지에 따라 정국 상황은 급변할 수 있다.
정국이 강경 대치 국면으로 치달을 경우 한나라당은 내부 단결을 모색, 재기의 길에 나서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원내 제1당의 울타리 자체가 훌륭한 정치적 무기인 만큼 이를 토대로 새로운 경쟁의 룰을 만들어 재집권의 기반을 굳힐 수 있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 당장 눈앞에 닥친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전열을 정비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한편 노 정권이 개혁세력의 재결집을 모색하며 정계 개편을 시도할 경우 한나라당 내 세력간 이합집산을 촉발하게 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