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태한/전자파 공개 '눈치보기'

  • 입력 2002년 12월 9일 23시 41분


휴대전화기 전자파흡수율(SAR) 자율표시제가 시작 단계부터 삐걱대고 있다.

이달 1일부터 휴대전화 제조업체가 전자파흡수율을 자율적으로 표시하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어느 업체도 이를 따르고 있지 않다. 소비자들은 전자파흡수율을 표시한 제품을 사려야 살 수가 없다.

정보통신부를 대신해 자율표시제를 주관하는 민간기관인 전파산업진흥회도 업체 관계자들을 모아 벌써 3차례나 회의를 열었지만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진흥회 관계자들이 “연말이라 더 이상 회의를 열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 제도는 상당기간 공염불이 될 모양이다.

전자파흡수율이란 휴대전화 전자파의 인체 흡수 정도를 나타내는 단위로 휴대전화기의 안전성 여부를 파악하는 수단이다. 휴대전화는 이제 ‘생활필수품’이라는 점에서 소비자들은 전자파흡수율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 왔다.

한국은 휴대전화기의 전자파흡수율 허용치를 1.6W/㎏로 정해 유럽과 일본의 2W/㎏에 비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개별 제품의 측정값은 그동안 비밀에 부쳐 왔다. 안전도 기준을 통과한 제품의 측정값이 공개되면 시장 혼란만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휴대전화 제조업체들도 정부의 입장에 적극 동조했다. ‘전자파흡수율 수치가 낮은 것이 곧 좋은 제품’이라는 인식이 퍼지면 기업으로서는 그만큼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전자파흡수율 자율표시제의 표류 원인은 사전 준비 부족에서 찾을 수 있다. 정통부는 지난달 중순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기존의 입장을 바꿔 이 제도의 시행을 전격 발표했다. 하지만 사전 준비 없이 발표만 서둘러 업체들의 반발만 샀다. 또 ‘민간 자율에 맡긴다’는 방침은 업체들이 시간을 끄는 구실이 됐다.

그렇지만 휴대전화기의 전자파로부터 인체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수단인 전자파흡수율 공개를 미루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는 없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업체는 전자파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가 말끔히 가시도록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행정이나 기업활동 모두 소비자들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닌가.

김태한기자 경제부 free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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