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남성욱/北주민은 달러 원하는데…

  • 입력 2002년 11월 25일 18시 30분


최근 북한의 움직임들은 각각의 지향하는 정책목표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시기에 연속적으로 발생함으로써 그 핵심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 우선 북한은 다음달부터 외화상점에 있는 상품의 가치를 유로화(유럽연합 통화)로 표시하고 북한내 외화결제도 유로 중심으로 운영한다고 한다.

▼당국 反美가 사태 악화시켜▼

동시에 북한은 미국이 12월부터 중유 공급을 중단하는 데 대한 불만의 표시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중유 사용처 확인 대표단의 입국을 불허했다. 또한 북한은 비무장지대(DMZ)의 지뢰제거 작업이 군사분계선에서 남북 각각 100m씩 남겨 놓은 채 북한군과 한국 국방부 및 유엔사간의 상호 검증 절차에 대한 협상을 결렬시켰다. 따라서 사실상 경의선 철도와 동해선 임시도로의 연내 연결이 차기정부로 이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기에 더해 북한은 지난달 23일 금강산 관광지구를 지정했다고 25일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발표하기도 했다.

실타래처럼 엉킨 이러한 조치와 행동들을 이해하기 위해 각 조치들의 상대방을 적용시켜 보자. 해당 대상은 핵 문제의 협상대상인 미국, 경의선의 연결 당사자인 한국, 그리고 북한주민으로 구분하기로 한다.

첫째 사태인 유로화 선정 조치의 카운터 파트는 미국과 북한 주민이다. 우선 미국과의 관계는 정치적으로 볼 수 있다. 국제무역 거래에서 유로화보다는 달러화가 선호되는 상황에서 달러화를 포기한 것은 미국의 경제적 지배에서 탈피한다는 상징적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은 북한주민과의 관계를 고려한 경제적 해석이다. 북한은 7·1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취하면서 환율을 달러당 2원에서 150원으로 인상했다. 환율인상으로 달러의 가치를 현실화해 10억달러로 추정되는 북한주민들의 장롱 속 깊이 숨겨둔 달러를 끄집어내려고 했으나 달러를 보물로 생각하는 주민들의 달러 선호로 실패했다. 신의주특구 정책도 여의치 않고, 국제금융기구로부터의 자금 조달도 미국의 거부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주민과 기관들의 비자금 10억달러는 북한의 연간 무역규모가 15억달러 안팎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금액이다. 7·1조치 이후 물자 공급부족으로 인플레이션의 위협을 받고 있는 북한 당국으로서는 이러한 경화를 활용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로 KEDO 조사단의 방북 불허는 미국을 겨냥한 조치다. 북한 전력 생산량의 10%를 담당하고 있는 중유가 다음달 공급 중단되면 북한의 전력사정이 악화돼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뢰제거 작업 중단은 미국과 한국정부를 동시에 견제하는 조치다. 북한은 3주 앞으로 다가온 남측 대선을 앞두고 현 정부를 상대로 지뢰제거 작업을 완료하기보다는 차기정부를 상대로 새로운 거래를 시도하는 편이 경제적 실리를 얻어내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특히 정전협정을 무력화시켜 북-미간 불가침조약 체결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조치로서 한미간 틈새를 확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북한은 핵위기와 경제난 속에서도 이 같은 조치들을 통해 자신들의 국익을 극대화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이 의도대로 성과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유로화의 결제통화 선정은 조선중앙은행 금고 속으로 달러를 흡수하기보다는 대외거래 불편과 달러 밀거래를 유발할 수 있고, KEDO의 방북 불허는 경수로 공사의 차질을 야기해 전력난 해소를 지연시키며, 지뢰제거 작업 중단은 한국내 대북 불신을 심화시켜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마저도 어렵게 할 수 있다.

▼경제위기 더욱 심각해질듯▼

연내 개성공단 착공과 금강산 육로관광 등의 무산은 북한이 얻을 수 있는 이득마저 스스로 포기하는 조치다. 금강산특구 지정도 남측의 무관심으로 메아리 없는 조치가 될 것이다. 북한이 현실을 직시해 각 조치들의 득실을 따져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할 경우 올 겨울 경제위기 심화로 더욱 매서운 추위를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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