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서진영/'후진타오 中國' 상대하기

  • 입력 2002년 11월 10일 19시 15분


마침내 중국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시대’가 개막되었다. 그간 여러 가지 추측이 있었지만 16차 당대회가 개최되면서 예정대로 장쩌민(江澤民)을 중심으로 한 제3세대 지도부가 물러가고, 후진타오 국가 부주석을 핵심으로 하는 제4세대 지도부가 전면에 나서는 권력이양이 진행되고 있다. 물론 아직도 장쩌민 주석의 권력 이양 범위와 방식에 대해 불투명한 점이 남아 있고, 최고권력 내부의 합의 도출에 실패할 경우 후진타오 체제가 뿌리도 내리기 전에 좌초할 위험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과거에 비하면, 후진타오 체제로의 권력이양이 질서 있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美-日 견제에 긴장확산 우려▼

따지고 보면 후진타오 체제의 등장은 일찍부터 예상되었던 것이다. 이미 1998년과 99년, 후진타오가 국가 부주석과 중앙군사위 부주석으로 임명되면서 국내외에서 장쩌민 주석의 후계자로 공식 인정받았기 때문에 후진타오 체제는 그야말로 ‘준비된 후계체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후진타오 시대는 기본적으로 장쩌민 시대의 계승 발전이란 점에서 당장 별다른 차별성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장쩌민 시대와 마찬가지로 지속적인 개혁 개방 노선을 통한 부강한 중국의 건설을 강조하고, 경제발전과 정치안정을 무엇보다도 중시할 것이다. 대외정책 분야에 있어서도 후진타오 체제는 미국의 지나친 패권주의를 비판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미국 및 서방세계와 협력관계를 유지하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도 후진타오 체제는 장쩌민 체제가 추진했던 기본방향, 즉 남북한 당사자간 타협과 협상을 통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유지를 강조할 것이다.

이처럼 후진타오 체제의 정책방향은 당분간 장쩌민 시대의 그것과 큰 차별성을 보이지 않겠지만, 후진타오 체제가 안정되면서 제4세대 지도부 나름의 특징과 성향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제3세대와 제4세대 지도부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3세대와 제4세대 지도부는 모두 경제발전과 정치안정을 강조하는 기술관료들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제4세대 지도부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받고 성장한 기술관료 출신들이다. 따라서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해 나름대로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세대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이들은 그전의 세대처럼 혁명과 내전의 고통으로 단련되지 않았지만,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란 정치적 풍파를 경험하면서 본능적으로 이념의 폐해를 체득했기 때문에 실용주의적 성향을 선호하면서도, 동시에 중화 민족과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해 더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과거 세대들보다도 중화 민족의 잠재역량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특히 개혁 개방 시대의 고도성장과 그에 따른 중국의 국력신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그에 합당한 지위와 영향력을 요구하려고 할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중국 위협론을 제기하면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려는 미국이나 일본과의 긴장과 마찰이 확대될 위험성이 증대할지 모른다.

특히 유념해야 할 부분은 후진타오 체제의 등장으로 한반도 주변 4강에서 모두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전후 세대가 지도부에 등장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 그리고 곧 총서기에 오를 중국의 후진타오는 모두 탈냉전시대에 이념보다 자국의 이익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한반도 주변에 복잡한 힘의 정치가 재연될 가능성을 증대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4강 경쟁 활용 실리외교를▼

탈냉전시대의 한반도에서 이들은 모두 자국의 실리를 극대화하는 차원에서 남북한 관계를 재정비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상호 경쟁과 견제는 심화될 것이고, 그에 따라 우리의 4강 외교도 심각한 도전과 기회를 맞게 될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19세기 말과 같이 강대국간 합종연횡의 희생물로 전락할 위험성이 크지만, 동시에 4강의 상호경쟁과 견제를 활용하면, 우리가 어느 정도 상대적 자율성을 갖고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서진영 고려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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