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기홍/잘난 짓과 못난 짓

  • 입력 2002년 11월 10일 19시 06분


송곳, 가난, 그리고 사랑.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두 개의 음절로 구성된 단어라는 것말고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숨길수록 더 드러난다는 점이다. 주머니에 든 송곳은 감추면 감출수록 그 뾰족한 끝이 도드라진다. 가난을 감추려할 때 셔츠의 때는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법이고, 사랑 역시 감추려해도 달뜬 얼굴 모습이 더 환하게 드러난다. ‘못 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라는 책에선 송곳 대신에 기침을 거론하기도 한다. 숨길수록 더 드러나는 존재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못난 짓’이 그것이다. 국가건, 기업이건, 개인이건 아무리 잘난 척해도 못난 짓은 종내 드러나기 마련이다.

▷재정경제부는 최근 미국의 ‘5인승 레저용 픽업트럭’인 ‘다코타’를 화물차가 아닌 승용차로 분류하고, 이런 차가 수입될 경우 화물차에는 부가되지 않는 특별소비세(차량 가격의 14%)를 물릴 것을 추진 중이다. 문제는 이 자동차에 대해 건설교통부가 이미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화물차라는 판정을 내린 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경부의 입장은 다르다. ‘자동차의 사용목적 등을 고려해 차종을 결정한다’는 ‘특별소비세법’의 규정에 따르면 ‘다코타’는 승용차라는 것이다. 쌍용자동차의 5인승 무쏘 스포츠가 승용차인 것도 같은 이치다. 가만히 있을 미국이 아니었다. 주한 미국대사관 관계자가 외교통상부를 방문, 픽업트럭에 특소세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미국정부의 의견을 전달하기에 이르렀다.

▷국제무역의 법칙에 내국민 대우라는 원칙이 있다. 어떤 외국상품이라도 일단 국내에 들어오게 되면 국내상품과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금은 이 범주의 핵심이다. 국내의 5인승 무쏘 스포츠가 승용차로 간주되어 특소세가 부과되어야 한다면 이와 비슷한 ‘다코타’에도 같은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이게 내국민 대우다. 그러니 재경부의 판단이 맞지 않을까? 건교부의 자동차관리법은 말 그대로 자동차 관리와 안전 확보를 위한 법으로 세금 부과와는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 항의를 했다는 소식에 마음 한구석이 다소 불편하다. 미국의 항의가 있을 경우 슬며시 양보를 해 왔던 저간의 일들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통상협상을 비롯한 국제협상에서 우리는 참 ‘못난 짓’을 많이 해 왔다. 재경부가 이번에 모처럼의 ‘잘난 짓’을 선택한 것은 대견한 일이다. 물론 정부 내에 재경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어느 부처가 나서서 원칙을 뒤집는 ‘못난 짓’을 할지 지켜볼 차례다.

김기홍 객원논설위원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gkim@kie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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