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해봅시다][영화]이강복 사장 VS 박병무 사장

  • 입력 2002년 11월 10일 17시 47분


한국 영화산업의 양축을 형성하고 있는 CJ엔터테인먼트 이강복 사장(왼쪽)과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의 박병무 사장이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만나 영화산업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전영한기자
한국 영화산업의 양축을 형성하고 있는 CJ엔터테인먼트 이강복 사장(왼쪽)과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의 박병무 사장이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만나 영화산업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전영한기자

《“요즘 좋으시겠습니다. ‘가문의 영광’이 아주 잘 됐던데요.”(이강복·李康馥 CJ엔터테인먼트 사장·50)

“CJ야말로 극장사업이 올해 아주 좋았던 것 아닌가요.”(박병무·朴炳武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 사장·41)

몇 년새 부쩍 성장한 한국 영화산업의 최고 맞수가 서울 남산 하얏트호텔의 한 카페에서 편한 옷차림으로 만났다. 전혀 다른 인생 항로를 거쳐 영화산업에 뛰어든 두 사람은 팽팽한 맞대결을 펼치며 한국의 ‘영화판’을 ‘영화산업’으로 키워낸 주역들이다. 두 업체의 투자규모를 합치면 한국 영화계 전체 투자액의 절반을 훌쩍 넘어선다.》

이 사장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요즘 술은 자주 하십니까? 저는 요즘 아침에 세수는 안 해도 헬스클럽에 들러 운동은 꼭 합니다.”(이 사장)

“영화 쪽으로 와서 술 많이 늘었습니다. 사람들을 잘 모르니까 술로 친해지는 수밖에 없더군요. 하지만 이제는 차차 줄이려고 합니다.”(박 사장)

올 한해 서로의 성과에 대한 ‘덕담’이 이어졌다.

“올해는 박 사장이 부러워요. 영화가 다 잘 됐잖아요. 게임 음반 등 콘텐츠 분야로 쭉쭉 뻗어가는 것도 그렇고…. 우리는 극장도 많고 케이블TV도 있고 해서 콘텐츠 채우는 게 항상 고민이거든요.”(이 사장)

“다른 쪽은 괜찮은데 극장 쪽이 쉽지 않네요. 얼마 전 멀티플렉스업체(프리머스시네마)를 세워서 극장사업에 진출하려고 하는데 서울은 CJ가 꽉 잡고 있어서(웃음) 쉽지 않네요. 주로 지방 쪽으로 파고 들려고 합니다. ”(박 사장)

“우리 둘이 합치면 ‘퍼펙트’가 되겠네….”(둘은 함께 파안대소)

올해 플레너스는 330만명의 관객이 든 ‘공공의 적’, 490만명이 넘어 쾌속질주하고 있는 ‘가문의 영광’ 등으로 톡톡히 재미를 봤다.

반면 전국에 94개로 가장 많은 스크린을 확보한 CJ의 CGV멀티플렉스는 극장산업에서 큰 이익이 예상된다. 양사 모두 최근의 ‘화두’는 영화제작과 배급부터 극장사업까지 전 분야에 걸친 ‘수직계열화’를 이루는 것.

올 들어 잇따라 실패한 ‘한국형 블록버스터’ 얘기가 나오면서 한국 영화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점으로 이야기가 번졌다.

“시작한 지 5년 정도 됐는데 재미도 봤지만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어요. (CJ가 투자했던 ‘공동경비구역 JSA’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염두에 둔 듯) 사전 준비작업을 철저히 해서 비용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준비가 부족한 감독이나 느슨한 제작관행이 문제예요. 투기적으로 들어온 영화펀드 등 ‘금융자본’(영화산업에 투자한 벤처캐피털을 지칭)도 거품을 부풀렸죠. 투자자도 문제입니다. 영화배우 만나보고 싶다고 영화산업에 뛰어든 사람도 많이 봤어요.”(이 사장)

“여기저기서 돈이 들어오니까 거품이 끼면서 ‘질’에 문제가 생긴 거죠. 갓 데뷔한 감독이 몇십억원을 겁 없이 쓰기도 하고…. 촬영기간이 얼마 걸릴지 예상조차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올해 들어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조정기에 들어섰습니다. 달리 보면 이제야말로 정상적으로 대형 영화사가 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입니다.”(박 사장)

앞으로 영화산업의 전망에 대해서는 다소 의견이 엇갈렸다.

“미국 관객 1명이 한해 5∼6편, 유럽은 2.5∼4회, 일본은 1∼2회를 본다고 해요. 한국도 이미 2회를 넘어섰어요. 현재 전국의 스크린이 1200개쯤으로 추정되니까 머지 않아 성장의 한계에 이를 겁니다. 이런 상황인만큼 이제는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갖추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이 사장)

“이 사장님 말씀에 동의하지만 아직 발전가능성이 많다고 봅니다. 한국의 문화산업은 지역편차가 너무 심해요. 아직까지 침투하지 못한 지역도 많고 발전할 여지가 많아요. 또 중국이나 아시아 시장을 공략해 뿌리를 내리는 방법도 찾는다면 가능성은 있습니다.”(박 사장)

9세의 연배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영화 경륜은 비슷하다. 이 사장은 제일제당에서 20여년간 잔뼈가 굵은 전형적인 ‘대기업 맨’에서 99년 8월 영화사업에 투신했다. 박 사장은 기업인수합병(M&A)분야 최고의 변호사에서 2000년 10월 영화사업가로 변신했다. 왜?

“원래 저야 영화사업과는 거리가 먼 비즈니스맨이죠. 고등학교 때 작가를 꿈꾼 ‘문학소년’이긴 했지만…. 회사에서는 입사 후 20년간 곡물이나 설탕 선물거래하면서 ‘베팅’만 했어요. 제 인생의 대부분은 팔거나, 사거나, 기다리거나 세 가지뿐입니다. 하긴 영화산업도 ‘베팅’이긴 마찬가지이지만…. 사업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지요.”(이 사장)

“오래 전부터 문화 콘텐츠 산업쪽으로 사업을 하고 싶었어요. 많이 아는 것은 아니고요.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해서 투자하는 거죠. 변호사 시절 했던 인수합병 업무경험이 큰 도움이 됐어요. 현재의 영화 게임 음반사업에 더해 언젠가 출판, 방송까지 갖춘 종합 엔터테인먼트 그룹을 키우는 게 꿈이죠.” (박 사장)

영화산업에 뛰어든 뒤 가정생활에도 작은 변화가 생겼단다. 이 사장의 고교 2학년생 딸, 박 사장의 초등학교 6학년생 아들이 장차 ‘영화계’에서 일하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고.

저녁 시간을 넘기며 영화와 ‘인생’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술 한잔 해야하는데…”라는 아쉬움만 남기고 각자 남은 하루일정을 마치기 위해 호텔 문을 나섰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이정은기자 ightee@donga.com

■이강복 CJ엔터테인먼트 사장

△1952년 인천 출생

△제물포고, 서울대 영어교육과 졸업

△1978년 제일제당 입사

△1987년 제일제당 당업부장

△1997년 제일제당 원료사업부 본부장

△2000년 4월 CJ엔터테인먼트 대표

△e메일 kblee@cj.net

■박병무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 사장

△1961년 경북 경산 출생

△대일고, 서울대 법대 및 동 대 학원 졸업

△85년 사법연수원 졸업

△88년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 사

△94년 하버드 로스쿨 졸업

△2000년 플레너스엔터테인먼 트(로커스홀딩스) 대표이사

△e메일 bmpark@plen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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