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기관화 장세’ 믿다 발등찍힐라

  • 입력 2002년 10월 20일 17시 29분


‘기관이 살 것 같은 종목을 미리 사 두라?’

최근 증시에서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기관화 장세 대처법’이다. 기관화 장세란 수천억∼수조원대의 막대한 자금 동원력을 가진 기관투자가들이 업종 대표주를 집중적으로 사들이며 시장을 주도하는 장세를 말한다. 따라서 이런 기관화 장세가 시작되기 전에 먼저 업종 대표주를 사두면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이런 주장에는 함정이 적지 않다. 단지 ‘기관이 살 것 같은 종목을 잘 찍어내자’는 관점보다는 실적이 좋은 우량주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르는 정석투자가 더 바람직하다는 지적.

▽기관화 장세〓최근 증시에서 거론되는 기관화 장세는 정확히 말하면 ‘미니 기관화 장세’ 개념에 더 가깝다. 기관이 1년 이상 업종 대표주에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본격적인 기관화 장세를 기대하는 이는 많지 않다. 그만큼 최근 시장 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

대신 4월 이후 주가가 급락하면서 손절매를 계속 한 덕에 기관투자가들은 현재 현금을 충분히 확보한 상태. 최근 증시가 반등 중이어서 결국 이들도 어떤 형태로든 투자를 재개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결국 기관투자가들도 평소 하던 대로 업종 대표주를 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전망.

즉 기관이 살 것 같은 종목을 잘 골라 미리 사둔 뒤 기관이 매수를 시작하면 팔고 나오는 ‘단타 매매’가 바람직하다는 조언이다.

▽함정〓올해 4월 주가지수가 900을 넘었을 때 한국 증시에서는 “곧 기관화장세가 시작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득세했다. ‘기관이 좋아하는 종목 30선’ ‘기관이 장기 보유할 수밖에 없는 종목 10선’ 같은 보고서가 잇따라 증권가에 나돌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 시점이 종합주가지수 최고점이었고 이후 증시는 긴 추락을 시작했다. 5월에도 사모펀드 금액이 10조원을 넘으면서 기관화장세가 곧 올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지만 장세는 반전되지 않았다.

이처럼 기관화장세란 언제 시작될지 누구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또 한국 기관투자가들 가운데에는 독자적인 철학으로 투자에 나서기보다 외국인 포트폴리오를 따라하기에 급급한 이들도 적지 않다.

한국 기관이 투자를 본격화할 무렵이면 오히려 주가가 고점을 찍고 하락세로 돌아선 역사적 경험이 더 많은 것도 이 때문. 이런 상황에서 기관화장세에 대한 섣부른 기대는 위험하다는 지적.

▽기업에 집중하라〓전문가들은 “기관화장세의 핵심은 기관이 살 것 같은 종목을 잘 골라내는 ‘찍기 게임’이 아니다”라고 조언한다.

기관이건 외국인이건 결국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 종목, 즉 실적이 좋고 저평가된 안정적인 우량주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하는 것이 진정한 기관화장세 대처법이라는 것.

동부증권 장영수 기업분석팀장은 “무작정 업종대표주를 골랐다가 기대했던 기관화장세가 오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며 “기관이 사건 말건 상관없이 그 기업을 믿고 오랫동안 기다릴 수 있는 저평가 우량주에 장기투자하는 태도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 미 양국 대표적인 기관화 장세 역사 비교
국가미국한국
명칭니프티 피프티(Nifty Fifty) : 1960년대 후반 미국 기관투자가들이 선호하던 휴렛팩커드 월트디즈니 맥도널드 등 우량주들이 주도한 장세. 이런 종목이 약 50개 정도여서 이를 ‘멋진 50종목(Nifty Fifty)’이라고 불렀음.골든칩(Golden chip) 장세: 1993년 말 기관화 장세가 시작되면서 블루칩 가운데에서도 핵심 블루칩을 기관이 대거 매수, 이들을 중심으로 시장을 형성. 블루칩보다 더 좋은 주식이라는 의미로 ‘골든칩’이라고 부름.
지속성1960년대 후반부터 1972년까지 약 5, 6년 동안 지속.1994년 초까지 약 6개월 동안 지속.
결과열풍이 끝난 1972년부터 주가 하락. 그러나 기관선호 우량주들은 1980년대부터 장기적인 상승을 시작.1995년 이후 기관 선호 종목 주가 폭락. 이후 본격적인 기관화 장세는 다시 나타나지 않음.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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