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이진/"청와대 내정 없었다는데…"

  • 입력 2002년 10월 16일 18시 19분


환경부가 15일 마침내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후임자를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청와대 쪽에서 정영식(丁榮植) 전 행정자치부 차관 내정설이 나온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당시 기자가 청와대 내정설을 보도했을 때 환경부는 “내정이라는 표현을 쓰지 말라”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항의의 배경은 이렇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은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후보추천위원회가 2명의 후보를 추천하면 환경부 장관이 이 중 한 명을 임명한다. 환경부는 아직 후보추천위원들이 인선도 되지 않은 마당에 ‘내정 운운’ 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라고 펄쩍 뛰었다.

더구나 환경부 고위 관계자는 “후보추천위는 민간위원이 5명으로 과반수를 차지하는데 청와대가 내정했다고 하면 이 분들이 얼마나 불쾌해하겠느냐”고 말했다. 후보추천위의 자율성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의미였다.

이런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후보추천위가 15일 2명을 추천하자 김명자(金明子) 환경부 장관은 정 전 차관을 낙점했다. 후보추천위원장인 이만의(李萬儀) 환경부 차관은 “정 전 차관이 행정경험이 풍부하고 대인관계도 폭넓어 적임자였다”고 말했다. 정 전 차관은 또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예산확보능력도 갖췄다는 설명이다.

이 차관은 “모양새는 좀 좋지 않지만 청와대 내정과는 전혀 관계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환경부는 후보 추천 과정을 알아보려는 기자의 거듭된 요구에도 불구하고 후보추천위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위원들이 신상을 밝히지 말고 회의내용도 비공개로 하자고 합의했다는 게 이유였다.

민간위원까지 참여해 정부 산하기관장을 인선했으면 그 과정을 공개하는 게 마땅하다. 후보추천위제도는 투명성을 전제로 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산하기관의 예산을 더 따낼 수 있는 인사를 뽑았다는 설명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국민이 정부 산하기관장의 임명 과정을 알 수도 없고, 더구나 세금이 원천인 예산 배분이 사람에 따라 쉽사리 주물러진다면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진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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