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자]안철수 사장

  • 입력 2002년 10월 15일 17시 13분


안 사장은 이윤보다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공헌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목표하고 말한다. - 사진 이만홍작가
안 사장은 이윤보다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공헌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목표하고 말한다. - 사진 이만홍작가
“마이클 조던이 야구선수로 활동하다가 다시 농구로 돌아온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차이로 볼 수 있습니다.”

국내 최고의 컴퓨터보안업체인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安哲秀·40) 사장은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에 대해 대뜸 조던을 이야기한다. 그는 이공계든 인문사회계든 상관없이 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것 세 가지가 맞는 분야를 택하면 보람 있게 살 수 있다고 충고한다. 조던은 바로 그 점을 놓쳤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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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안 사장은 의대로 진학해 의사와 의대 교수의 길을 걷던 중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개발을 계기로 뒤늦게 엔지니어와 벤처기업 경영자로 진로를 바꿨다. 그 역시 진로 선택시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안 사장은 1988년 자신의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7년 동안 새벽 3시에 일어나 아침 6시까지 백신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되풀이했다. 물론 그때에도 아침이면 늘 정상 출근해 밤 9시까지 병원 수련의로 근무했다고 한다. 마침내 그는 1995년 서울 서초동 뒷골목에서 3명의 직원으로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의사 집안 장남이라 가업을 잇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다른 쪽이 더 재미있었으나 직업이 재미로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에게 다른 쪽은 바로 과학. 삼중당 문고 400권을 다 읽은 그였지만 소설보다는 과학책에 더 재미를 느꼈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엔 책을 들고 부산 남포동의 부품상가를 들락거리며 진공관 라디오와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직접 조립하기도 했다. 그렇게 보면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남들보다 좀 더 긴 시간을 가진 셈이다.

그런 만큼 안 사장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일종의 신념을 갖고 있다. 안철수연구소가 2001년 코스닥시장에 진출할 때 다들 안철수 이름 석자를 믿고 투자하려고 해 당시 4백40억원 규모의 공모주 청약에 무려 1조5천억원이 몰렸다.

“벤처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목표와 결과를 혼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과 명예는 열심히 일한 결과여야지 목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안 사장은 월트 디즈니가 없다면 어린이들의 꿈이 사라질 것 아니냐고 묻는다. 그에게 기업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윤택하고 살만하게 해주는 일을 해야하는 곳이다. 그래서 안철수연구소의 존재 의미도 ‘많은 사람들이 쉽게 쓸 수 있는 안전한 기술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렇지만 현실은 명분만으로 되는 곳이 아니다. 안 사장은 요즘 일본 진출에 분주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세계적 보안업체들이 할거하고 있는 일본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함으로써 안철수연구소를 세계적 기업으로 키우기 위함이다.

세계적 경쟁 속에서 안 사장은 직원들에게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를 강조한다. 베트남전쟁 때 하노이 포로수용소에서 낙관주의자들은 풀려날 희망만을 안고 오늘내일하다가 결국 상심으로 죽었지만, 단시일 내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대비를 한 현실주의자는 살아남았다고 한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결국 잘될 것이라는 열정과 함께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갖춰야 올바른 선택과 좋은 결과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안 사장은 평소 자신을 절벽을 오르고 있는 사람 같다고 말한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까마득하고 위를 쳐다보면 봉우리가 구름에 가려 보이질 않습니다. 멈추지 않고 계속 정상을 향해 가야죠.” 그를 따라 절벽을 올라갈 제2, 제3의 안철수를 기다려본다.

이영완 동아사이언스기자 puset@donga.com

▼안철수 사장은…▼

1962년 부산 출생. 부산고와 서울대 의대를 거쳐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과정을 밟던 중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을 개발, PC통신을 통해 무료로 제공하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단국대 의대 전임강사 및 의예과 학과장를 역임했으며 1995년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했다. 안철수연구소는 1999년 정보보안업체로는 최초로 연매출 100억원을 돌파했으며 올 상반기에만 12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안 사장과 안철수연구소는 그동안 정보통신분야 관련상이라면 거의 다 수상했을 정도로 성공한 IT 벤처의 상징이 됐다. 올해 세계경제포럼의 ‘차세대 아시아의 리더’로 선정될 만큼 해외에서도 명성이 자자하다. 같은 과 후배인 김미경(金美暻·39)씨와 사이에 초등학교 6학년 딸을 두고 있다. 부인도 최근 의사직을 그만두고 법률 공부를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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