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전진우/이런 대통령

  • 입력 2002년 10월 11일 18시 31분


올 5월 ‘21세기의 신생 독립국’이 된 동티모르의 사나나 구스마오 대통령은 아무래도 대통령 자리에 별 뜻이 없는 모양이다. 그는 최근 한 포르투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할 수만 있다면 오늘 당장 사임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지난해 대통령후보 출마선언에서도 “나는 대통령으로 최선의 인물이 아님을 알고 있다. 나는 조국이 독립되면 호박을 가꾸고 동물들을 키울 꿈을 키워왔다”고 했으니 그저 해보는 빈말은 아닐 터이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원하지 않는 대통령이 됐지만 국민은 내가 그들의 이익을 보호할 것이라고 믿어도 된다.”

▷멋지지 않은가. 시인이자 교육자 출신으로 20여년간 동티모르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구스마오 대통령이다. 아직 최종평가를 내리기에는 이르겠지만 이런 대통령이라면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독립을 위해 무장투쟁을 서슴지 않았으나 독립된 후에는 지배자였던 인도네시아를 따르던 무리와 그들에게 저항했던 세력간의 화해에 앞장섰다. 그런 그에게 유네스코는 ‘올해의 평화상’을 수여했다.

▷‘투쟁과 화해’의 리더십이라면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27년 동안 투옥생활을 하는 고초 끝에 1994년 대통령직에 올라 흑인통치시대를 연다. 하지만 그는 백인들에게 보복하지 않았다. 백인정권의 극악한 인종차별정책에 분노했던 흑인들을 달래가며 ‘흑백의 위대한 화해’를 이끌었다. 그의 5년 임기가 다해갈 때 다수 남아공 국민은 그가 5년 더 대통령 자리에 있기를 바랐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후계자인 부통령에게 자리를 넘기고 미련 없이 대통령직을 떠났다. 그는 말했다. “이제 일곱 손자들과 고향의 계곡과 언덕, 시냇가를 거닐며 여생을 보내겠다.” 상상만으로도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우리는 헌정사 반세기가 지나도록 이런 대통령 한 사람 두지 못했다. 군부독재시대가 지나면 우리도 ‘아름다운 대통령’을 볼 수 있으려니 했지만 민주화의 대명사로 불리던 두 민간정부의 대통령도 무능과 부패로 국민 기대를 저버렸다. 하물며 요즘에는 대북 뒷거래설에 노벨 평화상 로비설까지 불거져 실로 참담하고 민망할 지경이다. 이제 두 달여가 지나면 새 대통령이 나올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국민에게 믿음과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인물이라면 좋겠다. 그러나 현실로 눈을 돌리면 온통 폭로와 비방, 증오와 적개심의 정치뿐이니 우리 국민은 ‘아름다운 대통령’을 보기까지 도대체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할까.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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