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종훈/얼굴없는 대선캠프 학자들

  • 입력 2002년 10월 4일 18시 33분


대선이 가까워오면서 많은 교수 등 전문가들이 대통령후보 캠프로 몰려들고 있다.

하지만 지지하는 후보를 떳떳하게 밝히고 각종 정책 자문에 응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는 이름이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얼굴 없는 자문단’이다.

이달 초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의 정치철학을 담은 책 ‘미래를 여는 창’의 발간을 주도했던 이 후보의 핵심 외곽자문그룹 ‘북악포럼’도 그중의 하나. 각 분야 전문가 100여명으로 구성된 이 포럼은 최근 회원이 급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참석인사들은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 있다. 책에도 집필을 담당했던 공성진(孔星鎭) 한양대 교수의 이름만 올라 있다. 책 후반부에 수록된 지난해 12월의 제15차 포럼 내용도 회의장소는 물론이고, 토론참가자 전원이 익명으로 되어 있다.

한나라당의 집권 비전을 제시한 280여쪽짜리 종합보고서를 5월에 냈던 ‘국가혁신위원회’ 역시 외부전문가 237명이 토론회 워크숍 등에 참석했다는 사실만 밝혔을 뿐 참가자 명단은 비밀에 부쳤다.

이 같은 상황은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나 무소속 정몽준(鄭夢準) 의원 캠프도 마찬가지다. 이들 캠프 역시 교수를 중심으로 이뤄진 국정자문위원회와 정책자문단을 두고 있지만 멤버를 공개한 적이 한번도 없다.

명단을 밝히지 않는 이유에 대해 한 후보 캠프 관계자는 “프라이버시 문제도 있고, 본인들이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핵심 인물일수록 절대 비공개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명공개를 회피하는 실제 이유는 학계 및 학생들의 비판을 피한 뒤 자문하는 후보가 당선될 경우 ‘한자리’하겠다는 기회주의적 태도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경실련 고계현(高桂鉉) 정책실장은 “교수들의 대선후보에 대한 조언이 지식인의 사회참여 활동의 한 유형이라고 볼 때 정당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면서 “당당하게 이름을 밝히고, 지적받을 것은 떳떳이 지적을 받는 책임의식을 보여줌으로써 투명한 정치를 구현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유력 대선후보에게 조언하는 전문가의 경우, 조언이 차기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또 본인들이 직접 국정에 참여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정치에 참여하는 지식인들은 누구를 지원하는지를 공개해서 유권자들이 대선 후보를 선택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종훈기자 정치부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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