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창]민찬홍/들어라 초병들아

  • 입력 2002년 10월 4일 18시 21분


1980년 몇몇 행태학자들은 아프리카 초원의 벨벳원숭이에게서 단어라고 부를 만한 세 가지 울음소리를 분간해냈다. 수십 마리가 무리지어 사는 벨벳원숭이들 중 어느 한 마리가 포식자(捕食者)를 발견하면 경고의 울음소리를 내는데, 포식자가 독수리냐 표범이냐 또는 뱀이냐에 따라 울음소리가 달랐고, 무리의 다른 원숭이들은 경고 소리에 따라 피하고 숨는 방법이 달랐다. 이들은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독수리다!, 표범이다!, 뱀이다!” 정도에 해당하는 세 단어로 된 언어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벨벳원숭이의 교훈▼

무리의 어린 원숭이들은 처음에는 아무 새나 보면 “독수리다!”라고 소리지르고, 포유동물을 보면 “표범이다!”라고 외치는 등 잘못된 경고를 발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자라면서 점차 제대로 분간해서 알맞은 경고음을 낼 수 있게 되었으며, 어린 원숭이들의 서툰 경고 울음 이외에 거짓으로 늑대를 외쳤던 양치기 소년처럼 동료를 속이기 위한 거짓 경고 울음은 관찰되지 않았다. 오히려 짓궂은 행태학자들이 실험이라는 명목으로 원숭이들의 경고음을 녹음해서 “늑대야!” 놀이를 했던 모양이다.

벨벳원숭이의 경고 체계가 갖는 선택적 이점은 분명하다. 각각의 경고음은 내 육안으로 지각하지 못한 포식자들을 지각할 수 있게 해준다. 경고음 덕분에 나는 내 앞의 먹이를 보면서 동시에 저 뒤에서 다가오는 표범도 볼 수 있다. 믿을 만한 경고 체계는 나의 지각을 확대해준다.

우리 인간들은 지각을 확대해주는 사회적 장치를 고도로 발전시켜왔고, 또 모든 개인들은 그 장치들에 너무 익숙해 있어서, 온갖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지각이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잊곤 한다. 필자는 11년 전에 실종된 ‘개구리 소년들’의 유해와 흙더미 속에서 썩어 가는 옷가지들을 본다. 또 필자는 거실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천수의 멋진 발리슛을 보는데, 아마 경기장에 있었더라도 이렇게 생생한 모습을 볼 수는 없었으리라.

벨벳원숭이 무리가 좀 더 효율적인 경계를 위해 집단의 외곽에 초병을 세우기로 했다고 하자. 초병들은 주변에서 접근하는 포식자들을 무리에게 보고하는 일을 전담하게 되고, 원숭이 사회에는 사회적 분업이 발생하게 된다. 이제 원숭이 무리의 생존과 번영은 초병들이 제 일을 얼마나 믿을 만하게 하느냐에 달려 있게 될 것이다. 동시에 초병들은 무리 내의 다른 원숭이들에 대해 일종의 권력을 갖게 된다. 이들은 다가오는 포식자를 보고도 자기 몸만 피해서 다른 원숭이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으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표범이다!”라고 외쳐 원숭이들의 생업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

철학자 칼 포퍼는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볼 것을 지향하던 경험주의자들에게 “굶주린 사자에게 세상은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 둘 중의 하나로 보일 것”이라고 빈정거리면서 “결국 모든 지각은 관심에 의존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관심 의존성은 확대된 지각 체계에서는 더 심각한 문제가 된다. 인간 사회의 초병들은 이미 하나의 권력 기관이 된 지 오래고, 자기들에게 유리한 것만 큰소리로 외쳐온 것도 하루이틀 된 얘기가 아니다. 우리의 지각 확대 시스템은 지각을 확대시켜주는 것 못지않게 지각을 선택하거나 왜곡하는 문제를 낳기도 한다.

▼입맛 맞는 소리만 외쳐서야▼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확대된 지각 체계를 통해 미국의 고층빌딩이 테러리스트들의 자살 공격으로 무너져 내리는 것은 볼 수 있지만, 미국의 군대가 베트남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는 들을 수 없다. 이 같은 예는 많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초병들은 세련된 포스트모더니스트들로서 사실이란 주어지는 게 아니고 만들어지는 거라고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이 아무리 정교한 철학으로 분장하더라도, 소박한 실재론자인 필자는 사실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주어지는 거라고 믿고 있다. 초병들의 사실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면, 그것은 그들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사람들은 초병들이 보여주는 것을 보지만 동시에 그것을 보여주는 초병의 모습도 보고 있다. 우리 사회의 초병들은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민찬홍 한남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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