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AG/육상]“동티모르 동포들에 희망 주고파”

  • 입력 2002년 10월 4일 17시 57분


그는 ‘희망’이란 두 글자를 간절하게 찾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식민통치를 벗어나 올 5월 독립국가로 거듭난 동티모르의 여자마라토너 마리아나 디아스 시메네스(20·사진). 1m53, 40㎏의 자그마한 체구에 아직 애된 티를 벗지 못했지만 그의 작은 가슴속은 하나의 일념으로 차있다. 한 번도 뛰어보지 못한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해 절망에 빠져 있는 동포들에게 희망의 ‘빛’을 찾아주겠다는 각오다.

조국의 동포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식민통치에 이은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국민 60%가 30세 미만이고 10%가 과부다. 고아들도 수만명. 국민 대부분이 생필품이 없어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우리나라엔 굶는 사람이 많아요. 전쟁 통에 엄마 아빠를 모두 잃은 어린이들이 배고파 우는 모습은 정말 불쌍합니다. 국제사회가 우리나라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시메네스는 동티모르의 어려운 형편을 설명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시메네스가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 7년전. 그러나 지금까지 뛴 가장 긴 코스가 하프마라톤인 21.0975㎞다. 기록도 엉망이지만 그가 뽑힌 이유는 단 한 가지, 동티모르의 유일한 여자 마라토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처음 뛰는 풀코스라 겁이 나지만 헐벗고 굶주린 동포들을 떠올리며 완주하겠다”고 이를 악다물었다.

사실 동티모르가 부산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하는 것은 무리였다. 첫 국제대회라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단복은커녕 경기복도 없었다. 지난달 27일 입국한 시메네스도 유니폼이 없고 운동화는 낡아 뛰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9개종목 15명의 선수가 모두 그랬다. 그런데도 옵저버 자격으로 굳이 참가한 것은 아시아 국가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

동티모르 선수들의 어려움이 알려지자 온정이 잇달았다. 서포터스들도 즉석에서 100만원을 모아 전달했다.

시메네스는 “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한 것만으로 금메달을 딴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한국의 따뜻한 대접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수도 딜리에 있는 모리에르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있는 그는 조국을 세계에 알리는 외교관이 되는 게 꿈이다.

부산〓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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