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김윤식-쇼난을 통해 본 국제정치

  • 입력 2002년 10월 4일 17시 50분


◇장소의 국제정치사상: 동아시아 질서변동기의 요코이 쇼난과 김윤식/장인성 지음/518쪽 1만8000원 서울대 출판부

전통적인 동아시아 국제질서에서 근대적 국제법 질서에로의 이행, 그것은 다른 두 세계관이 서로 충돌하는 변혁기이기도 했다.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바뀌지 않을 수 없었다. 전통적 사유, 특히 유교에 입각해 있던 지식인들은 그런 사태를 과연 어떻게 읽었을까.

이번에 출간된 저자(서울대 외교학과 교수)의 저서는 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유교적 소양을 갖춘 지식인들이 이질적 타자인 서양과 근대 국제정치가 조우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국제정치관의 내용과 특질을 비교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국제정치사상의 존재양식을 통째로 밝혀보려 한 거작이라 할 만하다.

주요한 분석 대상은 ‘유학자’인 동시에 ‘정치가’였던 요코이 쇼난(橫井小楠·1809∼1869)과 운양 김윤식(雲養 金允植·1835∼1922). 그런 만큼, 그들의 ‘철학적 사고체계’ 자체보다는 ‘현실을 포착하는 사고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조금 부연한다면, 그들의 “유교적 심성이 국제정치 영역에 투사되는 방식”, 다시 말해 “유교적 심성의 ‘장소’적 존재양상과 국제정치를 보는 유교적 심성”을 밝혀보고자 했다.

무엇보다 ‘장소’라는 용어가 눈길을 끈다. 단순한 공간적인 그것이 아니라 시간적 특수성이 담긴 ‘시공간적 의미권’, 나아가서는 ‘의식의 존재근거’까지도 포함된다. 하지만 ‘장소’는, 그 깊은 뜻을 완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것 같다. 본문에서 흔히 ‘토포스(topos)’라 쓴 것 역시 그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어쨌든 그것은 정체성, 곧 아이덴티티(identity)와 직접적으로 그리고 깊이 연결되어 있다.

유교가 현실적 사고의 근거로 작용할지라도, 그것이 자아내는 양상과 뉘앙스가 다른 것은 다름아닌 그 때문이라 하겠다. 저자는 쇼난과 운양을 통해서 그것을 거의 완벽할 정도로 입증해내고 있다. 심하게 말하면 “요코이 쇼난과 김윤식은 목적이 아니라 유교와 장소의 특질을 드러내는 하나의 수단이었을런지도 모른다.”

한일 간의 비교사상사적 분석이라는 점 외에도, 저자가 구사하는 토포스와 컨텍스트의 비교방법론, 컨텍스트 속에서 쇄국과 개국의 ‘정치 언어’를 포착하는 분석기법은 단연 돋보인다. “정치상황과 지식 패러다임이 크게 바뀌는 때와 장소에서는 … 상황 속에서 발화된 언어의 편린(片鱗)을 모아 그 표상의 의미와 상황적 함의를 읽어내는 지적 노력”은 충분히 적실성을 갖는다.

치밀한 분석과 설명이 설득력을 발휘하는 만큼, 그래서 오히려 두어 가지 의문점을 적어두고자 한다. 왜 쇼난과 운양이어야 하는가. 당시 사상계 내에서 유교가 차지했던 위상과 비중은 서로 다르지 않았나. 게다가 그들의 유교는, 진공상태의 그것이 아니라 이미 ‘토포스’의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던가.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간 유학자들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적인 자극을 듬뿍 안겨주는 것 역시 이 책의 미덕이라 하겠다.

김석근 연세대 연구교수·한국정치사상 leenh@ss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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