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의 증시산책]‘떨어지는 칼날’ 일단 기다려라

  • 입력 2002년 9월 29일 17시 38분


‘떨어지는 칼날을 잡지 마라’는 증시 격언이 있다. 소나기가 세차게 쏟아질 때는 빗줄기가 약해질 때까지 기다린 뒤 길을 나서야 하는 것처럼, 주가가 계속해서 떨어질 때는 섣불리 ‘사자’에 나서지 말라는 뜻이다.

증시에 비관론이 많아지고 있다.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추락했던 미국의 다우지수가 25일과 26일 큰 폭으로 반등했지만 종합주가지수는 모기 눈물만큼 찔끔 오르는 데 그쳤다. 게다가 27일에는 다우지수가 폭락세로 마감돼 월요일 한국 증시도 하락 압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주가가 떨어질 때 종합주가도 함께 하락하고, 미국 주가가 오르고 외국인이 주식을 사더라도 종합주가는 상승하지 못하고 있다. 증시가 호재에는 둔감하고 악재에 민감한 것은 투자심리가 불안한 탓이다.

1929년의 대공황을 겪었던 존 템플턴은 “최근의 정보기술(IT) 거품 같은 버블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고, 주식투자 등으로 엄청난 돈을 번 조지 소로스는 “미국의 다우지수가 앞으로 1,000포인트는 더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등 월가의 많은 ‘원로’는 증시를 어둡게 보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폴 오닐 미국 재무부장관이 “미국 경제가 회복 중”이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기업과 증권회사가 직원을 대규모로 정리해고하기 때문이다. 돈벌이에 가장 민감한 기업이 감원한다는 것은 경기가 적어도 앞으로 6개월∼1년은 회복되지 못할 것으로 내다보는 것을 뜻한다.

투자자(펀드매니저)가 가장 고통스러울 때는 펀더멘털(기본여건)이나 풍부한 시중자금 등을 볼 때 증시가 상승세를 나타낼 것 같은데 주가가 슬금슬금 하락할 때라고 한다. 가을 보슬비에 옷이 젖고 고뿔 걸리는 것처럼, ‘어∼, 어∼’ 하는 사이에 원금의 상당부분을 날리기 십상이다.

증시가 상승세로 돌아서려면 미국-이라크 전쟁 같은 불확실성이 사라지고, 기업의 매출과 이익이 증가하며, 외국인과 기관 등 큰손들이 주식을 적극적으로 사기 시작하는 등 긍정적 신호가 나타나야 한다.

지금은 나무(종목)보다는 숲(증시 전반상황)이 어떻게 될지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떨어지는 칼날을 잡으려면 칼날이 무뎌지고 칼날을 이겨낼 수 있는 장갑을 마련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홍찬선 경제부기자 hc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