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의 건강세상]全腦교육

  • 입력 2002년 9월 29일 17시 24분


군대 얘기는 하는 사람은 재미있고 듣는 사람은 고역이라는데, 독자들의 용서를 구해야겠다.

필자가 육군 ○○부대에서 근무할 때 신병이 들어왔는데 아무리 윽박 질러도 그는 ‘군인의 길’을 비롯한 암기사항을 전혀 외우지 못했다. 고교를 졸업했어도 한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던 것이다.

고참이 되자 몇 달 동안 그 친구에게 한글을 가르쳤지만 ‘가나다’만 되풀이하다가 ‘하산’해야만 했다.

그가 왜 그렇게 한글을 배우는 데 어려움을 겪었는지 최근에야 알게 됐다. 이유는 사람의 뇌가 언어나 셈을 배울 수 있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 이 친구는 지능에 문제가 있기는 했어도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교육만 받았으면 이런 상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근 교육부가 10월 15일 전국의 초등학생 70만명을 대상으로 기초학력 진단평가를 실시하겠다고 밝히자 전교조와 학부모 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그런데 뇌과학이나 교육학적 원리에서 보면 기본적으로 교육부 방침이 옳다. 그래야만 그 졸병 같은 불행한 사람이 줄어들게 된다.

기초학력이 떨어지는 경우 원인은 △지능지수(IQ)가 70 이하인 학습지진 △지능은 정상이지만 뇌의 특정 부위가 문제가 있어 읽기 쓰기 셈하기 중 하나를 못하는 학습장애 △가정 환경 등의 이유로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습부진 중 하나이며 원인별로 대책이 다르다.

학부모 중에는 왜 초등 3학년 때 ‘시험에 들게 하느냐’고 항의하는데 사실 학습장애를 발견하고 치유하려면 이것도 조금 늦은 감이 있다. 뇌의 발달과정을 보면 학습장애는 1, 2학년 때 발견하는 것이 대책 마련에 가장 좋다.

초등 3학년 무렵에는 수학 공간지각 운동 대인관계 등을 관장하는 우뇌와 언어 구사력과 관련있는 좌뇌를 연결하는 뇌들보의 얼개가 대략 완성돼 본격적으로 발달하는 시기이다. 특히 뇌들보에 있는 2억개의 신경회로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좌뇌와 우뇌를 종합하는 활동을 한다.

이 때문에 9세 이전에는 구체적이고 단순한 것을, 10세 이후에는 종합적이고 추상적인 것을 가르친다는 것은 교육학의 진리다. 4학년부터 갑자기 교과 과정이 어려워지는 것도 이런 원리에 바탕한다. 당연히 초등 3학년 때 기초학력에 대한 평가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학부모의 반발 역시 일리가 없지는 않다. 그동안 정부의 여러 가지 교육 실책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못 믿도록 자초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먼저 교육부는 어떻게 타당한 평가방법을 만들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 교과서의 난이도를 조절하는데 이번 평가를 어떻게 활용할지도 밝혀야 한다. 평가 뒤 기초학습에 문제가 있을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관심사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 교육이 암기 위주의 좌뇌 교육이 아니라 전뇌 교육으로 바뀐다면 기초학력 평가는 내일의 현실 부적응자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