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다이애나와 오아시스

  • 입력 2002년 8월 30일 18시 07분


그들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 여자는 가족에게 버림받은 뇌성마비 장애인이고 남자는 멀쩡하다가도 대책없이 한심한 짓을 하는 전과 3범이다. 그런 그들이 글쎄, 사랑을 한다. 서로를 공주마마, 장군이라고 부르면서. 40만 관객을 모은 이창동 감독의 한국 영화 ‘오아시스’ 얘기다. 입이 비틀려 말조차 제대로 못하는 공주가 환상 속에서 “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하고 노래하는 장면, ‘콩밥’ 먹는 처지이면서도 공주의 식성을 닮게 돼 “나도 이제 콩이 싫다”고 말하는 장군을 보며 엉엉 우는 관객도 있다.

▷5년 전 오늘 세상을 떠난 영국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는 부와 권세와 미모 등 모든 것을 다 가진 여자였다. 단 한 가지, 사랑만 빼놓고. 스무살 나이로 열두살 위 찰스 왕세자와 결혼하기 전 그는 이미 신랑과 신랑의 오랜 연인 카밀라 파커 볼스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첫날밤부터 10여년을 시달린 신경성 대식증과 거식증은 사랑받고 싶은 욕구의 무의식적 표출이다. 다이애나비는 자신을 신경증환자로 몰고 가는 남편에게 분노했고 고통 끝에 화려한 감옥을 탈출했다. 그러나 하이에나처럼 쫓아다니는 파파라치의 감옥 속에서 종국엔 죽임을 당했다.

▷물론 ‘오아시스’는 허구이고 다이애나비는 실제다. 둘을 비교하는 것이 합당치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에게 주어진 상상력을 한번쯤 발휘해 보자. 영화 속 공주와 장군은 사회가 외면한 낙오자였으되 사랑이 있어 행복했다. 물론 호르몬의 맹렬한 화학작용에 따라 결혼한 뒤엔 그 사랑이 얼마나 오래갈지 의문이지만. 이에 비해 다이애나비는 살아 있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찰스 왕세자는 그를 왕실의 부속물로 여겼고, 주변에선 신분과 상징으로만 대했으며, 대중은 동화 속에서 걸어나온 신데렐라이자 상품으로 보았다. 그래서 다이애나비는 불행했다.

▷공주와 장군, 그리고 다이애나비는 평범한 우리들과는 ‘다른’ 사람들이다. 그러나 사람은 본질적으로 같다. 또 다 다르기에 사람이다. 나와 다른 사람에게 우리는 대체로 비인간적일 만큼 잔인해진다. ‘오아시스’는 그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감동적으로 일러준다. 나무 그림자를 무서워하는 공주를 위해 창문 밖 나뭇가지를 잘라주는 것, 바로 받는 사람이 원하는 형태로 사랑을 주는 거다. 진짜 공주였던 다이애나비는 남편사랑은 못 받았어도 자선활동에 나섬으로써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그가 20세기의 신화로 기억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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