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의 건강세상]컴퓨터 중독

  • 입력 2002년 7월 14일 17시 48분


이번 주부터 전국의 초중고교가 방학에 들어간다. 필자가 초등학교 1년생인 딸에게 방학 계획에 대해 묻자 딸은 “자전거도 타고요, 음, 어린이공원에도 가고요, 바다에도 갈거예요”라고 또르르 뱉어낸다. 이로써 아빠의 휴가 계획도 덩달아 정해지고 말았다. 딸 아이는 “방학 때엔 놀아야 하기 때문에 공부는 해서 안돼요”라고 미리 못을 박는다.

필자가 “컴퓨터는?”이라고 되묻자 아이가 입을 다문다. 엄마가 옆에 있기 때문일게다. 아내는 “컴퓨터에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바보가 된다”며 아이의 컴퓨터 이용 시간을 제한하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서 새록새록 자라는 것을 보면 늘 생명에 대한 경이감을 느끼지만 필자는 아이가 컴퓨터를 배운 것에도 적잖이 놀랐다. 아이는 컴퓨터에 대해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인터넷을 능숙히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혹시 아이가 인터넷 중독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 같다. 다른 부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80년대부터 학계에서는 컴퓨터 중독이 강박경향, 충동성, 우울증, 자존감 저하 등과 연관있다는 연구결과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90년대말부터 컴퓨터 중독 때문에 자아 정체성이 사라진 환자에 대한 보고도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정신과 전문의들은 인터넷 때문에 정신적 문제가 생기기 보다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가 인터넷에 빠져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한다.

최근 만난 어느 소아정신과 의사는 “요즘 들어 비행 청소년 중 시너나 본드 약물 중독인 아이의 수가 격감하는 대신 컴퓨터 중독 때문에 PC방에 가려고 비행을 저지르는 아이가 부쩍 늘고 있는데 이들 비행 청소년은 컴퓨터에 중독되지 않았으면 약물에 중독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아이가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적절히 받았고 친구들과 잘 지내며 음악과 미술 등을 즐긴다면 컴퓨터 중독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반면 과보호 또는 무관심 속에서 자랐든지 학습지, 선행 학습 등에 시달린 아이, 친구와 걸핏하면 싸우거나 참을성이 없는 아이는 컴퓨터 사용 시간을 하루 2, 3시간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 좋다. 또 아이에게 친구들과 자주 만나게 하고 가족끼리 연극, 전시회 등에 자주 가거나 여행을 같이 가는 것 등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컴퓨터에서 무조건 떨어지도록 하기보다는 이 기계를 잘 이용하도록 가르치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이다. 일반적으로 컴퓨터 중독자는 주로 게임과 채팅에 빠져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인터넷의 다양한 영역을 이용한다.

자녀에게 e메일 주소를 마련해 주고 부모와 편지를 주고받게 한다면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접점에서 아이를 만나는 좋은 길이 될 것이다.stein3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