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홍두승/군인의 氣를 살려라

  • 입력 2002년 7월 3일 18시 55분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조국의 영해를 지키다 장렬히 전사한 20대의 꽃다운 영령들의 마지막 가는 길에 대통령, 국무총리, 그리고 이 나라의 국방을 책임지고 있는 국방장관 그 어느 한 사람도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큰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의전상 참석하지 않았다는 구차한 변명은 듣기조차 민망하다. 더욱이 희생의 대가로 이들 유족의 손에 일시금으로 쥐어주는 보상금이 사망 직전 계급 보수월액의 36배로 고작 3000만∼5000만원 정도다. 이 금액은 그나마도 상향 조정된 것으로 1997년 이전에는 보수월액의 12배에 불과하였다.

이것이 선진국 문턱에 이르렀다고 외쳐대고 월드컵 4강 진입에 열광하고 있는 우리의 현주소다. 이 밖에 따로 연금을 받을 수 있지만 전사상자들에 대한 보상수준은 사회 일반 재해 보상수준에 비해 턱없이 낮다. 정부는 이제야 전사자에 대해 특별보상을 할 수 있도록 규정을 개정하겠다고 한다.

▼전사-참전군인 지원책 처참▼

전사상자들에 대한 보상이나 참전군인에 대한 지원정책이 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군문에 뛰어들어 자신의 고귀한 생명까지도 내던진 이들에 대한 보상은 지난날 정부의 무관심 속에 내팽개쳐져 왔다. 우리의 망각 속에 이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 버린 것이다. 6·25전쟁 전사상자, 베트남전 전사상자나 전후 고엽제 후유증 등으로 시달리고 있는 이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어느 정도였던가. 보조금까지 보태주어 금강산 관광을 계속할 때 이들에게는 무엇을 해주었던가.

전사자 유해발굴 및 안장작업은 6·25전쟁 50주년인 2000년 6월이 되어서야 시작되었다. 그 결과 일부 유해와 유류품을 수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참전군인 등 지원에 관한 법률’은 6·25전쟁이 종전된 지 40년이 지난 1993년에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호국영령 및 참전용사의 명예선양을 내걸고 있지만 이들의 희생과 공로를 보상하기에는 크게 부족하다. 70세 이상 참전군인 생계보조비 지급은 지금도 ‘추진 중’일 뿐이다.

물론 많은 부분이 국방예산과 관련되어 있다. 국내총생산 대비 국방비는 현재 2.8% 수준으로 세계 평균(3.8%)에도 크게 못 미치고 있다. 1980년 6% 수준에서 점차 감소해 1990년대 들어서면서 3%로 떨어지고, 2000년대에 와서는 2.8% 수준에서 책정되고 있다. 국방소요 판단에 따른 예산의 현실화를 하루빨리 이루어야 한다. 국방예산을 증액하자는 것은 냉전시대의 사고에 젖어 있어서도 아니고, 병영국가로 가자는 얘기도 아니다. 이는 우리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투자이기 때문이다.

국방예산의 상대적 축소의 여파는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군 간부의 43%가 15평 이하의 벌집형 아파트에 기거하고 있다. 방 2개의 15평형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어느 중견 영관급 장교는 아들과 딸에게 각각 방을 주고 부부는 마루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국민 평균 주거공간인 23.1평에도 크게 못 미치고 있으며, 그나마도 20년 이상의 노후 주거가 20%에 이르고 있다. 연대급 이하 부대의 반수 가까이는 노후한 사무실에 비품·집기류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 부족분은 관공서나 기업에서 중고품을 얻어 쓰거나 위문품으로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 어찌하여 민간이 용도 폐기한 중고품과 위문품으로 수요 부족분을 메울 수밖에 없게 되었는가.

뿐만 아니라 병사들의 상당수가 아직도 소대 단위의 비좁은 막사에 ‘수용’되어 있는 현실을 우리는 과연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인가. 과거에 비해 체격이 커진 병사들이 자기 공간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비좁게 누워 자는 군 막사를 아직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일부 야전 군부대 화장실은 30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국방예산 현실화 절실▼

지난 ‘문민정부’는 군을 개혁의 대상으로 간주해 군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고 지금의 ‘국민의 정부’는 군을 철저히 방치함으로써 군의 사기를 저하시켰다는 울분이 군 내부에 심각하게 흐르고 있음을 정책 당국자들은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온 국민의 축복 속에 출범한 문민정부 하에서도, 국민의 정부 하에서도 군의 사기는 여지없이 떨어지고 군은 크게 위축되었다.

최근 징집 대상자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4할은 군복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또 다른 4할의 젊은이들은 의무이긴 하지만 가능하면 피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국가가 국민에게 믿음을 주지 못할 때 그 국가는 더 이상 그 존재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월드컵의 열기에 묻혀버린 색 바랜 ‘호국보훈의 달’ 6월이 또 이렇게 덧없이 지나갔다.

홍두승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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