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美기업 신뢰추락 세계증시 휘청<하>

  • 입력 2002년 6월 27일 18시 24분


엔론에 이어 IBM GE 제록스 글로벌크로싱 타이코 월드컴 등 미국의 대표기업들이 순이익을 부풀렸다는 혐의로 증권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외환위기 직후인 97년 말 한국정부에 대해서도 ‘회계제도의 투명성’을 강하게 요구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 기업의 재무제표는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팽배했기 때문. 이는 대우그룹 분식(粉飾)회계에서 사실로 드러났고 이 밖에도 수많은 기업의 회계조작이 도마에 올랐다. 이 같은 사건을 계기로 지난 2, 3년간 한국의 회계투명성이 많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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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적(aggressive)인 회계처리〓회계에는 특성상 자의적인 해석이 개입될 수 있다. 38억달러 회계조작 혐의를 받고 있는 월드컴도 회사가 지출한 돈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월드컴은 “지출된 경비가 미래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며 규정을 어겨가며 ‘자본적 지출’로 해석해 비용이 아닌 자산으로 처리했다. 따라서 비용 38억달러가 자산으로 둔갑한 것이며 순이익은 이만큼 부풀려진 것.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화와 동부 SK그룹 계열사는 ‘부(負)의 영업권’을 순익으로 잡는 시기를 공격적으로 해석했다. 예를 들어 순자산가치가 100억원인 부실기업을 50억원에 샀다면 50억원의 부의 영업권이 발생한다. 50억원에 팔린 부실기업의 가치가 진짜 100억원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실체가 없는 이익이 장부상으로만 발생하는 것. 기업회계기준은 이 50억원을 “20년 이내의 합리적 기간 동안 이익에 반영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국내 기업들은 1년 만에 모두 이익으로 잡았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이들을 제재했고 ‘합리적 기간이 얼마인가’를 놓고 논란이 있었지만 회계법인들은 결국 “1년은 합리적이지 않다”며 잘못을 시인했다.

▽합병을 둘러싸고 조작이 많다〓미국에서는 엔론 월드컴 GE 등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한 기업의 회계부정을 주목하고 있다.

K회계법인 회계사는 “M&A 과정은 복잡해 회사의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회사의 자산가치가 과대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비상장기업이 코스닥등록기업을 인수해 우회상장(back-door listing) 과정에서 자주 나타난다. 검찰조사를 받고 있는 D사는 비상장회사인 C사와 합병하는 과정에서 C사의 기업가치를 실제보다 300억원가량 부풀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처럼 부풀려진 기업가치는 인수하는 회사의 영업권으로 기록돼 총자산이 일시적으로 늘어나는 효과가 있지만 최대 20년 이내에 비용처리하도록 돼 있어 매년 회사의 순익이 줄어든다.

LG산전은 99년 LG금속을 흡수 합병하면서 1조2775억원의 영업권을 기록했으나 LG금속의 주력사업부를 매각하면서 관련 영업권을 충분히 상각하지 않았다. 증권선물위원회는 “1조원을 손실처리해야 하는데 LG는 4475억원만 상각해 이익을 부풀렸다”고 판정했다.

▽점점 투명해져 가는 회계〓한국에서는 대우그룹 회계조작사건을 계기로 산동회계법인이 해산되고 대우그룹 임원들이 무더기로 구속됐다. 이들은 투신 등 기관투자가로부터 손해배상소송을 당한 상태. 또 프로칩스 회계조작 사건의 경우 개별 회계사 개인들도 투자자들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해 패소하는 등 회계투명성 부문에서 큰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금융감독원 이재식 감리총괄팀장은 “과거에는 매출액을 부풀리는 등의 물리적인 회계조작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회계기준을 공격적으로 적용하는 이른바 ‘창조적(creative) 회계’로 바뀌고 있다”며 “당국은 이 같은 회계에도 매우 단호한 입장을 견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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