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의 건강세상]응원 졸도

  • 입력 2002년 6월 23일 18시 01분


전국 곳곳에서 여성들이 실신(失神)했다. 월드컵 4강이 확정된 22일 서울 광화문 등 전국적으로 수십명의 여성이 응원을 하다가 졸도하고, 병원에 실려갔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일어나기도 했다.

다른 이유가 없는데도 흥분 상태에서 일시적으로 졸도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과호흡 알칼리혈증’이라고 부른다. 사람이 감정적으로 흥분하면 숨이 평소보다 가빠져 혈액에 산소가 많아지고 이산화탄소는 줄어들어 인체의 균형이 깨지고 혈액이 약알칼리성에서 강알칼리성이 된다. 이 경우 자신이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비현실감이 들기도 한다. 팔다리가 저리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의식을 주관하는 뇌간(腦幹)이 일시적 오작동을 일으켜 정신을 잃는 것이다.

그런데 훌리건(Hooligen)이 축구장 등에서 난동을 부리는 것은 뇌간보다는 감정 정서와 관련 있는 대뇌 가장자리계(변연계)가 고장나서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남성은 자율신경계 중 흥분을 맡는 교감신경계가 여성보다 발달해 있어감정 조절 시스템이 고장나면 남성은 흥분의 극치인 폭력 성향을 띠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과호흡으로 인한 졸도 뒤 중풍처럼 의식을 완전히 잃는 경우는 드물다. 중풍 때에는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져서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 뇌세포가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해서 죽는다. 그러나 과호흡 때에는 뇌에 산소와 영양분이 덜 들어가기는 하지만 대부분 곧바로 뇌의 복구시스템이 작동해서 뇌간을 정상화시킨다.

심장마비도 흥분상태에서 잘 생긴다는 점에서 과호흡증후군과 비슷하다. 사람은 흥분 때에 교감신경계가 과도하게 작용해서 혈관이 수축하는데 특히 고혈압 환자는 피떡이 생겨 수축된 혈관을 막을 수 있다. 이로 인해 심장동맥이 막혀 심장의 근육세포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서 심장이 멎는 것이 심장마비다.

혈압이 높거나 이전에 흉통을 경험한 적이 있는 사람은 축구경기를 봐도 꼭 누군가와 함께 봐야 하며 가급적 흥분하지 않도록 신경써야 한다.

누군가가 옆에서 과호흡증후군으로 졸도한다면 우선 119로 연락해야 한다. 일반인들은 과호흡증후군, 뇌중풍, 심장마비, 간질, 일사병 저혈당 등 어떤 이유로 쓰러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전문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구급차가 도착하기 전 숨을 헐떡대고 현기증을 보이는 등 과호흡증후군이 의심되면 비닐봉지나 신문지로 만든 깔때기 등을 입에 대고 내쉰 공기의 일부를 다시 들여마시게 한다. 내쉬는 공기에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높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신경안정제 주사를 놓아 감정의 불을 끈다.

일반적으로 평소 불안하고 조급하며 감각적 유행을 추구하는 사람이 느긋한 사람보다 과호흡증후군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응원장소 등 흥분하기 쉬운 곳에서는 틈틈이 숨을 가다듬어야 별탈없이 현장의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