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관의 일본통신 ]‘생각의 속도’가 승부 좌우

  • 입력 2002년 6월 8일 01시 15분


일본 언론이 ‘세기의 전쟁’으로 표현한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의 경기를 앞두고 삿포로 월드컵경기장 주변은 ‘준전시상황’을 연출했다.

경찰력만 7000명이 투입된 가운데 후텁지근한 밤 공기는 스릴러물의 배경처럼 묘한 긴장감을 자아냈고 경기장으로 향하는 축구 팬의 얼굴에선 ‘뭔가 터지지 않을까’ 하는 야릇한 기대감(?)을 훔쳐볼 수 있었다.

그러나 우려했던 경기장 내 불상사는 없었다. 98프랑스월드컵 때 베컴에 레드카드를 안겼던 아르헨티나의 시메오네는 경기 후 그라운드를 걸어나오면서 살며시 베컴의 손을 맞잡았다. 오히려 이날 경기는 ‘프로’가 뭔지, 양팀 선수들이 온 몸을 내던져 참모습을 펼쳐 보인 ‘세기의 명승부’였다.

전반이 축구의 진수를 뿜어낸 일진일퇴의 숨막히는 접전이었다면 후반에선 아르헨티나가 ‘이렇게 하면 진다’는 교훈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아르헨티나가 끝내 잉글랜드 골문을 뚫을 수 없었던 것은 경기 템포를 잃고 한결같은 패턴으로 상대를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잉글랜드 선수들은 드라이브만 날리는 상대 공격을 맞받아치는 탁구 선수처럼 단조로운 아르헨티나의 공격 패턴에 어느새 완전히 적응이 돼 있었다. 이럴 때 팀의 중심이 되는 스타 선수들이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이 중요한데 아르헨티나의 베론이나 바티스투타, 오르테가, 크레스포는 다급한 마음에 냉정함을 찾지 못했다.

아울러 이날 경기 전반은 현대 축구에서 ‘몸싸움에 밀리는 팀은 절대 이길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입증했다. 여기서 몸싸움은 체격을 앞세운 다툼이 아니라 상대의 움직임이나 볼 방향을 미리 아는 예측 능력, 즉 ‘생각의 속도’를 말한다.

체격과 힘이 앞서는 미국을 상대로 물러설 수 없는 경기를 펼칠 한국대표팀 후배들도 이날 경기에서 훌륭한 교훈을 얻었으리라 믿는다.

오이타트리니타 청소년팀 감독 canonshooter1990@hot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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