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두영/´럭비공´ 경제정책 때문에…

  • 입력 2002년 5월 30일 18시 37분


“방카슈랑스(은행에서 보험상품을 파는 것) 제도를 도입할지 여부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으면 국민은행에 추가 투자할 수 없다. 안개가 짙게 끼어 앞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항해를 떠날 수 있겠는가?”

네덜란드계 회사인 ING생명의 요스트 케네만스 사장은 ‘국민은행에 추가 투자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정부와 골드만삭스에 이어 3대 주주인 ING그룹은 당초 3월말까지 국민은행 지분을 4%에서 최소 8%로 높이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정부가 방카슈랑스 도입에 관해 명확한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어 투자협상은 중단된 상태다.

진념(陳稔) 전 경제부총리는 작년 5월 네덜란드 경제부총리를 만나 “2003년 8월로 예정돼있는 방카슈랑스 도입 시기를 앞당기겠다”고 약속했다. ING생명은 이 말을 믿고 국민은행에 추가 투자할 계획을 세우고 방카슈랑스 보험상품을 개발했다. 그런데 작년 10월 정부는 갑자기 조기 도입 방침을 철회했다. 케네만스 사장은 진 전 부총리를 만나 “정부가 나서서 ‘예측가능성’을 훼손하면 외국인들이 누구를 믿고 한국에 투자하겠느냐”며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것은 방카슈랑스 문제뿐만이 아니다.

정부가 보유하고 있던 KT(옛 한국통신) 지분의 민간매각이 21일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러나 SK텔레콤이 정부가 의도했던 것보다 많은 지분을 낙찰받자 정보통신부는 SK텔레콤에 ‘KT주식을 처분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통신업계에서는 SK텔레콤이 결국 정부 압력에 굴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선수(기업)가 정해진 룰(법과 제도)을 지키며 플레이 해도 득점 결과가 심판(정부) 의도대로 나오지 않으면 괜히 꼬투리를 잡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외환위기 이후 기업은 경영과 지배구조 등에서 불투명성을 많이 걷어냈다. 여기엔 정부의 강력한 독촉도 한몫을 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을 놓고 “정부의 행정 재량권은 여전히 남용되고 있으며 정책 불투명성 해소는 제자리걸음”이라고 지적하면 과연 정부는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김두영기자 경제부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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