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두영/˝정부 들러리는 싫다˝

  • 입력 2002년 5월 17일 18시 24분


“더 이상 정부의 들러리 역할은 하지 않겠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의 한 민간위원은 기자에게 이같이 단호하게 말했다.

공자위는 100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제대로 집행하기 위해, 또 이미 투입된 자금을 최대한 많이 회수한다는 목표로 발족된 기구다. 이런 공자위가 요즘 정부와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다.

불협화음이 처음 가시화된 것은 공자위의 민간 측 위원장 선출 사건. 법 규정상 위원장은 위원들이 자율적으로 뽑도록 돼 있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이진설(李鎭卨) 위원을 위원장으로 내정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위원들은 “정부가 왜 법 절차를 무시하느냐”며 이를 거부했고 마침내 강금식(姜金植) 위원을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공자위 사무국을 두고 있는 재정경제부가 위원들을 설득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두 번째 사건은 대한생명 매각.

“예금보험공사와 한화그룹이 작년 9월 말 기준으로 대한생명의 기업가치를 1조1000억원으로 평가하는 데 합의했다”는 말이 정부 쪽에서 흘러나오자 업계에서는 매각협상이 사실상 끝난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공자위 매각소위는 “대한생명의 개선된 경영실적을 반영해야 하므로 평가시점을 3월 말로 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매각소위는 “부실금융기관 매각은 공자위 내 매각심사소위의 심의를 거쳐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후 협상을 진행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며 “예보가 소위 심의 없이 한화그룹과 벌인 협상은 법적 효력이 없다”는 견해다.

정부 측에서 “공자위가 월권하고 있다”며 불평하자 공자위는 “정부가 월권하고 있다”며 정색을 하고 반박했다.

그동안 정부는 수많은 민간위원회를 만들었다. 정부가 직접 나설 경우 특혜 시비가 나오고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되므로 위원회에서 결정하라는 취지였다.

그런데도 정부는 막후에서 위원회를 움직여 왔고 위원회는 거수기 역할에 그친 일이 잦았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보니 ‘결정은 정부가 하고 책임은 위원회가 진다’는 말도 있었다.

이번 사건이 ‘위원회가 법에 명시된 권한과 기능을 다하는 기구’로 변모하는 계기가 될 것인가.

김두영기자 경제부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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