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대중문화 뜯어보기 '대중문화연구와 문화비평'

  • 입력 2002년 5월 17일 18시 00분


대중문화 연구와 문화비평/이동연 지음/374쪽 1만3000원 문화과학사

이박사의 테크노 뽕짝, 한류(韓流), 테크노 댄스, 러브호텔, 동성애, 트랜스 젠더, 이현세 만화, 연예인 황수정 사건 등 이른바 ’따끈따끈한’ 대중문화현상도 진지한 학문의 분석대상이 될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볼 때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는 서로 대립적이었고, 문화의 통속화에 반대하는 인문적 경향과 문화의 대중적 취향은 늘 긴장 관계를 유지해 왔다. 서구 문학의 경우 대학강단을 중심으로 연구되던 문학 텍스트들은 거의 귀족이나 상류 부르주아 계급의 전유물이었고, 일반 사람들이 즐겼던 이른바 대중문학(대중소설이나 동화)은 학자들의 연구대상에서 제외돼 왔다.

그러나 19세기 전반 근대적 신문의 발달로 신문연재소설이 대중적 인기를 얻으면서, 대중문학이 이른바 ‘진지한’ 문학작품을 압도하고 고급문학과 문화가 ‘주변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20세기 중반 이후 매스 미디어와 자본주의의 발달과 맞물려 문화는 예술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만이 누리는 안정적인 범주에서 벗어나게 됐다.

문화는 이제 단순한 예술적 취향의 문제나 장르가 아니다. 문화에 자본이 개입되고 미디어와 문화가 결합되면서 대중성에 바탕을 둔 문화가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치 문학텍스트를 읽는 듯한 정태적이고 장르중심적인 비평방식을 탈피해 보다 다각적이고 실천적인 대중문화 연구가 절실히 요구된다. 이제 대중문화 연구는 종래 추상적 이론에 치우친 문화비평방식에서 벗어나 당대의 대중문화현상의 중층적 구조와 이데올로기를 분석하고 실천적 토픽들을 끄집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대중문화가 거대한 비즈니스인 동시에 이데올로기가 중층적으로 겹쳐져 나타나고 욕망과 쾌락이 갖가지 꽃을 피우는 공간이란 점을 인식해야 한다. 문화(특히 대중문화)는 단순히 예술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만이 향유하는 영역이 아니라, 욕망과 이데올로기, 그리고 자본이 서로 어지럽게 뒤엉키는 공간이다.

그런 맥락에서 저자가 크리스테바와 텔켈(Tel Quel)그룹이 말하는 의미화된 실천(signifying practice), 주체화 양식, 실험적 공간생산 등의 개념을 대중문화 연구의 토픽으로 설정한 것은 적실한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대중문화현상 뒤에서 작동하는 이데올로기와 아비투스(habitus·행위에 영향을 주는 무의식적이고 보이지 않는 구조)의 다층적 매커니즘의 지형을 ‘개념적으로’ 읽어내고 실천적 개입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사안이다. 1964년 버밍엄 현대문화연구소(CCCS)를 중심으로 시작된 분과 횡단적이고 학제적인 문화연구 실천은 바로 이런 이론적 제도적 개입을 통한 정치학의 한 형태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하겠다.

종래까지의 대중문화 ‘인상비평’의 한계를 벗어나 풍부한 사례와 분석자료를 동원하여 문화 민주주의를 향한 이론적 담론 구성과 그것의 실천에 무게를 싣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이 갖는 또 다른 미덕이다. 그러나 문화연구에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비판, 하우크의 상품미학 비판, 들뢰즈와 라캉의 욕망이론, 그리고 공학적 개념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삶을 보다 풍요롭게 경작하는 ‘문화’의 핵심인 인문적 성찰의 국면이 소홀히 다뤄지는 것은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김동윤 건국대 교수·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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