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집으로´ 할머니

  • 입력 2002년 5월 10일 18시 25분


할머니집 할머니보쌈 할머니손두부 할머니감자탕…. 어느 거리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음식점 이름들이다. 우리나라 음식점 이름에 이처럼 유독 할머니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지난 시절 할머니의 정과 손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지금의 청장년들에게 할머니는 그리움과 따스함의 대상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아들 손자의 뒷바라지에만 매달려온 할머니의 삶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어려웠던 시절 할머니의 고난과 한숨, 아픔과 눈물, 노동과 헌신은 바로 우리가 크고 자라온 삶의 원동력이었다.

▷영화 ‘집으로’는 그런 할머니의 헌신적인 삶을 그린 작품이다. 산골에 사는 77세 청각장애 할머니의 일곱 살짜리 외손자에 대한 지극한 사랑, 처음에 있는 대로 투정을 부리다 마침내 그런 할머니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외손자의 성장기가 감동적이다. 무엇보다 주인공 김을분 할머니의 무공해 산골연기가 좋다. 휘어진 허리에 지팡이를 짚고 청각장애를 연기하는 모습이 부담 없고 자연스럽다. 그 속에서 관람객들은 가족 고향 어른 효(孝) 전통 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어린 시절 외가 식구 몰래 100원짜리 한 장을 손에 쥐어주던 외할머니의 모습도 떠오른다.

▷이 영화를 통해 300만 관객을 울린 주인공 김 할머니가 한국영화계의 가장 큰 상인 대종상 신인여우상 후보에 올라 또 한번 화제다. 대종상 역사상 최고령 신인상 후보라고 한다. 할머니를 신인상 후보에 추천한 발상이 그럴듯하다. 하긴 폭력 섹스가 담긴 영화만이 살아남는다는 한국 영화판에서 그런 순수하고 소박한 작품을 만들어낸 자체가 신선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손녀뻘 되는 젊은 신인 여배우들과 경쟁하게 된 김 할머니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 339만명에서 2030년에는 1160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이들의 가장 큰 걱정은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일하고 싶은 노인들을 찾아내 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우리사회의 책임이다. 그러다가 일 잘하는 노인들에겐 젊은이들과 똑같이 상도 주고. 영화판뿐만 아니라 사회의 여러 부문에서 속속 또 다른 ‘70대 신인’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세상은 지금보다 한층 밝아질 것이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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