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바다에서 건져낸 시간의 의미 '바다의 아코디언'

  • 입력 2002년 5월 10일 18시 07분


바다의 아코디언/김명인 지음/111쪽 5000원 문학과지성사

김명인(56·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시인이 3년만에 내놓은 일곱 번 째 시집의 제목을 보고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지난번 ‘길의 침묵’에 대해 “쓸쓸하고 고독할 지라도 현실을 딛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현실에 대한 초월”이라고 설명했던 시인은 이제 30년대풍의 모더니스트로 돌아선 것인가….

아니었다. ‘바다의 아코디언’은 마그리트의 유화속 흰 구름같은 댄디즘적 풍경이 아니었다. ‘고요해지거라, 고요해지거라/쓰려고 작정하면 어느새 바닥 드러내는/삶과 같아서 뻘 밭 위/무수한 겹주름들.’ 그것은 ‘시간의 헛된 주름’을 온몸으로 나타내는, 조개 껍데기의 내력을 시어로 펼쳐낸 것이었다.

그렇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주로 바다를 무대로, 모래나 소금같은 분말을 질료(質料)로 형상화된 그의 시어는 두 가지 시간의 잣대를 지닌다.

주로 그의 시간은 하나의 유한한 생(生)으로 미처 다 세지 못할 유장한 척도의 시간이며 또한 서럽다. ‘접혔다 펼쳐지는 한순간이라면 이미/한생애의 내력일 것이니,/추억과 고집 중 어느 것으로/저 영원을 다 켜댈 수 있겠느냐.’(바다의 아코디언)

그러나 널리 펼쳐져있던 그의 시간들은 어느 순간 자재(自在)의 인력으로 응집돼 눈 앞을 아뜩하게 한다. ‘누가 화염으로 타오르는가, 능소화/나는 목숨을 한순간 몽우리째 사르는/저 불꽃의 넋이 좋다/가슴을 물어라, 뜯어내면 철철 피 흘리는/천근 사랑 같은 것,’(저 능소화)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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