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미군기지 기름유출 왜 자꾸 생기나

  • 입력 2002년 5월 9일 18시 53분


주한 미군기지 내에서 기름유출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올 3월7일 경기 파주시 캠프 에드워드에서 1만4800ℓ 분량의 휘발유가 누출된 데 이어 이달 6일에는 서울 용산구 남영동에 인접한 미군 용산기지 내에서 난방연료가 유출됐다.

2000년 12월 한미 주둔군지위에 관한 협정(SOFA)을 개정하면서 양측이 ‘환경보호에 대한 특별양해각서’를 체결했으나 미군측이 오염사고를 우리 정부에 전화와 서면으로 통보해 준다는 사실 외에는 사실상 달라진 점이 없다. 이에 따라 환경단체 등은 기름유출로 인한 환경오염을 예방하기 위해 근본적이고 실효성있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계속되는 기름 유출 사고〓환경단체인 녹색연합 조사에 따르면 1990년부터 현재까지 외부로 알려진 미군기지 기름유출 사고는 총 23건이다. 90년대에는 1년에 한두건 발생했으나 2000년에는 7건의 사고가 일어났고 SOFA협정이 개정된 2001년 이후에도 7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환경 전문가들은 “최근 들어 기름유출 사고가 갑자기 늘어난 것이 아니라 과거에 은폐됐던 사고가 이젠 공개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한 미군의 기름유출 사고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지난해 5월 강원 원주시 캠프 롱에서 발생한 것이다. 캠프 롱에서 난방유로 사용된 2500갤런 규모의 저유탱크에서 유출된 기름이 장기간 농토로 스며들어 인근 4800여㎡의 논이 검은색으로 오염된 사고다.

지난해 7월에는 서울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용산 미군기지 주변의 지하수가 기름에 오염된 것이 확인됐으나 정확한 유출경로가 확인되지 않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한미간 공동조사가 진행되는 기간 중에도 기름 유출은 계속돼 지금도 지하수에는 하루 10ℓ 가량의 기름이 계속 섞여 나오고 있다.

이처럼 기름 유출 사고가 계속되는 것은 미군기지 내 대규모 유류저장 시설들이 낡았거나 체계적인 관리 감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남는 것은 오염〓미군기지 내 환경오염이 어느 정도인지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러나 외국의 사례에서 미군 주둔지는 기름과 군수 폐기물 등으로 뒤범벅돼 복구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1992년 미군이 철수한 필리핀 수비크만과 클라크공군기지의 경우 미군이 사용하다 버린 방사능 폐기물과 불발포탄 유독성 폐기물 등으로 주변 토양과 수질이 크게 오염된 상태.

1996년 이후 인근 지역 어린이 100여명이 각종 암으로 사망했고 300여명이 여전히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 정부는 미국에 환경정화에 대한 협력을 요청했으나 미국은 과거 필리핀과 맺은 협정을 근거로 오염정화 비용 부담을 거절했다.

카리브해의 섬나라 푸에르토리코의 경우 주민들이 최근 미해군 폭격지역에 대한 환경조사를 실시한 결과 아름다운 숲과 생물다양성을 자랑하던 이 지역이 불발폭탄과 기름 등으로 오염됐으며 방사능 누출 논란을 빚고 있는 열화우라늄탄 사용 흔적까지 발견되기도 했다.

1992년 미국 의회보고서에 따르면 사격장 1㎢를 복원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은 16억달러에 이른다. 이를 감안하면 미군 기지 이전이나 철수 후 토양 복원 등에 드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전망이다.

▽근본적 대책은 없나〓개정된 SOFA에는 환경사고 발생이나 기지 반환시 한국 공무원들의 출입을 허용하고 주한 미군의 환경관리 기준을 우리 법에 맞춘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으나 이런 방안만으로는 기름유출 사고를 근본적으로 예방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녹색연합 김타균 정책실장은 “전국의 미군기지 내 지하 유류탱크에 대한 종합적인 점검이 필수적이며 이 조사에는 환경부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및 환경전문가가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 전문가들은 기름유출 사고를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서는 △미군기지 내 유류저장 시설에 대해 한국 정부가 조사권을 가져야 하고 △토양환경보전법상 토양오염측정망을 미군기지에 설치하며 △미군측은 베일에 가려진 지하 유류탱크 현황을 공개하고 지상화할 것 등을 촉구하고 있다.

정성희기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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