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근대화 물결속의 중화사상 '천하관과 근대화론'

  • 입력 2002년 5월 3일 17시 35분


과학 기술의 발달로 ‘하늘 아래(천하) 새로운 것이 없는’ 이 도도한 세계화의 시대에도 천하장사니 천하제일이니 하는 말이 자주 사용되는 것을 보면 천하라는 말은 상당히 매력적인 모양이다. 이는 아마도 이 말이 보편을 자임할 수 없었던 우리로 하여금 묘하게 보편과 합일시키는 마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이는 고대 중국의 자기 중심적 우월의식이 깔린 말이다. 천하라는 공간에는 중심에 ‘문화’적인 중국이 있고 주변에 번국(藩國)이나 교화 대상인 이른바 네 오랑캐 즉 남만(南蠻) 북적(北狄) 동이(東夷) 서융(西戎)이 있다는 것이다. 어느 종족이건 자기 중심적으로 세계를 묘사하기 마련이지만 “하늘 아래 왕의 땅 아닌 게 없고 온 천하 왕의 신하 아닌 자 없네”(‘시경’)라거나 “사해(四海)의 안은 모두 형제”(‘논어’)라는 고대 중국의 천하관은 혈연 윤리에 기초한 독특한 문화적 관념이어서 뿌리가 깊고 강고한 것이었다.

실질적으로 중국이 하늘 아래 전부라는 이 세계관은 만주족 정권인 청나라가 중원을 차지하면서 약간의 곡절을 겪었지만 별다른 변화 없이 유지돼 왔다. 그리하여 고대 중국에는 단지 이런 천하 개념만이 있었고 근본적으로 세계 개념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런 천하관은 근대에 들어서면서 근본적으로 동요하게 된다.

이미 명나라 말기에 서양의 선교사들이 전파한 세계 지리에 관한 지식은 자기 중심적인 천하관을 뒤흔들기에 충분한 것이었지만 대다수의 사대부들은 이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아편전쟁에서의 참담한 패배는 중국인들로 하여금 더 이상 전통적인 천하관에 안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비로소 자신들이 세계 여러 나라 중에 하나의 나라, 그것도 강한 나라가 아님을 뼈저리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중국이 근대적 민족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환상적인 상상으로서의 천하관에서 탈피해야 했다.

이 책은 이 같은 중국의 천하관과 근대화의 연관성을 꼼꼼히 추적한 역작이다. 저자는 이 점을 밝히기 위해 전통적인 천하관에서 명백히 탈피해서 적극적으로 국가주의를 제창했던 무술변법의 개혁 사상가 양계초(梁啓超)의 사상을 특히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1부에서 명말 청초(明末 淸初)의 고염무(顧炎武), 황종희(黃宗羲), 왕부지(王夫之)를, 그리고 2부에서 청말(淸末)의 장지동(張之洞), 강유위(康有爲), 담사동(譚嗣同)을 각각 원경과 근경에 차례로 배치한 것은 양계초의 천하론 탈피가 중국의 근대화 논의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함인데, 이는 아주 적절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명말의 사상가들에게 명나라의 멸망은 공전의 대재난이었지만 그들은 망국(亡國)과 망천하(亡天下)를 구분하여 나라를 망했지만 천하를 보존해야 한다(保天下)는 논리로 결국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길을 찾은 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천하관은 여전히 유지됐다. 청말 세 사상가의 경우는 이들과 달리 천하관이 확실히 동요했지만 중국의 근대화에서 천하관의 변화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명백히 자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강유위 같은 인물은 변형된 천하관이라고 할 수 있는 이상적 대동(大同)의 세계로 회귀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에 반해 양계초는 이 점을 자각하고 천하로서의 중국을 세계 속의 하나의 근대 민족국가로 변화시키기 위해 분투했다. 애국의 사명감으로 속이 타서 ‘얼음을 마셔야’(飮氷室·음빙실은 양계초의 호)했던 그는 비록 시기에 따라 입헌군주제에서 공화제로, 공화제에서 개명전제(開明專制)로 입장이 변했지만 일관되게 이를 추진했다. 그런데 저자는 이 양계초마저도 전통적인 천하관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음을 추적한다. 저자가 보기에 근대 서양의 등장에 의해 일견 붕괴한 듯이 보였던 천하관은 형태를 바꾸어 살아남을 정도로 강력하다. 그 이유는 그것이 유가의 도덕주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주장은 뿌리깊은 것이다. 수신과 평천하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에 천하관의 동요는 거꾸로 중국 지식인의 인격 분열을 초래할 만한 중대한 일이기도 했다.

한편 저자는 인격을 닦은 자가 천하를 다스린다는 일견 그럴듯한 유가의 도덕주의적 주장의 이면에는 사대부만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엘리트 독재의 배타적 의지가 숨겨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천하관의 문제점을 명확히 자각하고 근대적 민족국가를 건립하기 위해서 민권, 민주를 주장했던 양계초마저도 나중에 개명전제를 옹호하게 된 것은 결국 이런 도덕주의에 함몰됐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저자는 유가의 도덕주의의 위험성을 줄곧 경고한다.

나는 일각에서 벌어지는 유가사상을 민주주의, 혹은 자본주의 심지어 페미니즘과 접합시키려는 시도가 많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유학이 전체를 명분으로 한 엘리트 정치를 위한 철학”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기본적으로 찬성하고 또 이 점에 대한 비판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저자처럼 개인주의나 자유라는 좁은 근대성(modernity)에 입각해서 유학사상을 비판하고 양계초의 사상을 평가하는 것도 일면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중국의 천하관에서 탈피한 것일 수는 있지만 또 다른 천하관에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식의 천하관, 혹은 대동(大同)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화가 기대고 있는 논리가 바로 개인주의와 자유가 아닌가.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들은 모두 격변기를 맞아 자기 문화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사유했던 굵직한 사상가들이어서 또 다른 천하관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새롭게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책이 중국 근대철학의 흐름에 무관심하고 고대철학에 편중되어 있는 우리 중국철학계의 편향을 바로 잡는 데 많은 기여를 하리라 기대한다.황 희 경 성심외국어대 교수·중국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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