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오명철/배고픈 감시견 배부른 애완견

  • 입력 2002년 4월 28일 20시 23분


어떤 면에선 ‘독재정권’ 시절이 기자노릇하기에는 더 수월했던 것 같다. 80년대 초 중반 사회부 근무 시절, 녹색마크가 새겨진 취재차를 타고 다닐 때면 마치 ‘시대의 보안관’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시위 현장에서 다른 신문이나 방송사 차에는 돌덩이를 던지던 학생들도 녹색 회사 마크가 그려져 있는 동아일보 차를 보고는 길을 터주곤 했다. 어쩌다 밖에서 친구나 선후배를 만나게되면 “왜 좀 더 용기를 내지 못하느냐”는 질책과 함께 “요즘 맘 고생 많지” 하는 따뜻한 위로를 받곤 했다. 몸은 고달팠으나 마음은 결코 피곤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언필칭 ‘문민정부’니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 기자노릇 하기가 참 힘들어 졌다. 언론자유는 얻었지만 독자의 기대와 요구는 더욱 높아졌고 언론 또한 분열됐기 때문이다. 이른바 ‘메이저신문’들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하는 집권층과 그에 부화뇌동하는 일부 지식인, 그리고 독재정권 아래에서 ‘지난 여름 한 일’을 뉘우치지 않고 있는 일부 신문과 방송의 터무니없는 질시와 공격이 그치지 않았다. ‘민주독재’는 ‘군부독재’ 보다 훨씬 지능적이고 야비하게 신문을 탄압했다. 대선이 다가오면서 ‘메이저신문’들에 대한 음해와 공격,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들에 의한 언론 내부 분열 획책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한마디로 기자노릇 하기가 ‘이보다 더 괴로울 수는 없는’ 시절이다.

문화부에 근무하지만 신문사에 몸담고 있는 탓에 요즘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될 것 같으냐”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농반진반으로 대답한다. “누가 되면 어떤가. 그것보다는 ‘성공한 대통령’을 갖는다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대통령이 되면 특정 신문을 국유화하고 해당 사주를 물러나게 하겠다고 했다는 어느 당 ‘확정 후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도 받는다. 그때는 이렇게 대답한다. “대통령은 국민이 선택하는 것이지 신문기자들이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기자’를 하려고 신문사에 들어왔고, 그리고 역사의 큰 흐름과 우리사회의 진통을 읽어내려고 노력할 뿐이다.”

이쯤에서 그 후보의 지지자쯤 되는 사람들은 “왜 특정 후보를 죽이려고 하느냐”고 따진다. “죽이려 한 것은 우리가 아니다. 그리고 신문이 죽이려 한다고 해서 죽을 리도 없다. 정치적 상황이 일변하면 우리가 아니라 요즘 당신들을 편들고 있는 일부 신문과 방송이 ‘하이에나’처럼 당신들을 공격하게 될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의 벤 브래들리 전 편집인은 언젠가 “정부와 언론의 갈등은 ‘필요한(Necessary)’ 것이라기보다는 ‘피할 수 없는(Inevitable)’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요즘 나는 ‘좋았던 시절’이 다시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배고픈 ‘감시견(Watch dog)’으로 살고 싶지 배부른 ‘애완견(Pet dog)’이 되고 싶진 않다.

오명철 문화부장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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