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뇌사-장기이식' 경험과 상상의 결합 '키메라'

  • 입력 2002년 3월 8일 17시 35분


키메라/정현 지음/301쪽 9000원 책읽는사람들

실력을 인정받는 30대 외환딜러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의사들은 뇌사판정을 내린 뒤 그의 여러 장기를 타인에게 이식하지만, 유복자를 뱃속에 간직한 약혼녀는 판정이 적법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제기한다. 죽은 딜러의 각막을 이식받은 뒤 빛을 되찾게 된 유통재벌은 자신과 관계된 사건이 논란거리가 된 사실에 곤혹을 느끼고….

현직 산부인과 원장이 뇌사판정 및 장기이식을 소재로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부회장으로 재직 중인 정원태(69·필명 정현) 부산대 산부인과 외래교수의 첫 장편 ‘키메라’.

제목은 사자 양 뱀이 합쳐진 신화의 괴물에서 유래한 것. 오늘날에는 ‘하나의 생물개체에 유전자형이 다른 조직과 함께 존재하는 현상’, 즉 장기이식을 뜻한다.

이 책을 ‘성공한 전문직 종사자가 소일거리로 쓴 소설’ 정도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플래시백 기법으로 재현되는 딜러 김동식과 약혼녀 황선화의 과거, 회사의 경영난과 건강문제 등 여러 어려움을 겪은 뒤 아름답게 삶을 정리하고자 하는 자산가 한백수, ‘이식된 각막’ 과 함께 주인공들의 과거를 한 끈으로 묶는 거창양민학살사건 등이 자칫 건조해질 수 있는 스토리에 풍요한 흥밋거리와 복선을 제공하며 읽는 재미를 준다. 전문가의 눈으로 치밀하게 묘사한 수술실 풍경, 법정에서 펼쳐지는 의학 공방 등은 차라리 부차적인 재미에 속한다.

“이 소설은 의학적 문제를 매개로 유전(流轉)하는 삶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이 강조하는 바는 ‘죽음에 대한 바른 인식이 전제된 삶’에있다. 의학적 경험을 토대로 풀어내는 삶의 근본적 과제가, 단순한 흥미에 그치지 않는 감동을 유발한다”라고 문학평론가 구모룡은 평했다.

작가는 지난해 중편소설 ‘티레시아스의 칼’로 한국소설 신인상을 수상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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