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말한다]'한국인은 왜 틀을 거부하는가?' 최준식교수

  • 입력 2002년 3월 1일 17시 31분


“한국의 미학은 ‘난장’과 ‘파격’에 있습니다.”

1997년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를 시작으로 ‘한국인에게 문화가 없다고?’ ‘한국미-그 자유분방함의 미학’ 등의 책을 선보이면서 ‘한국적 아름다움’의 특징을 설파해온 최준식 교수(이화여대·한국학)가 새 책을 내놓았다. ‘한국인은 왜 틀을 거부하는가?-난장과 파격의 미학을 찾아서’(소나무).

2000년 ‘한국미〓그 자유분방함의 미학’에서 ‘자유분방함’을 한국미의 핵심으로 부각시킨 그는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 논지를 편다. 무교(巫敎·샤머니즘)에서 파생된 무질서한 아름다움, 틀을 거부하는 파격이 한국미의 특질을 이뤄낸다는 것.

그는 “이번 책은 지금까지 펼친 논지를 집대성한 ‘학술본’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중요한 것은, 난장과 파격을 한국미의 핵심이라고 말할 때 그런 의미 부여는 조선시대 후기 이후를 대상으로 잡아야 한다는 거죠.”

조선 후기에 이르러 농지 면적이 늘어나고 이앙법이 보급되면서 평민층이 경제적 성장을 이루고, 이에 따라 민중문화의 ‘소박미’가 지배문화의 ‘정제미’와 결합하거나 때로 밀어내는 양상을 보이게 됐다는 것.

“유교라는 공식 지배이데올로기가 권위를 잃지 않으면서 무교의 영향이 컸던 곳은 우리뿐입니다. 이것 역시 기층민중의 문화가 조선 후기에 크게 성장했기 때문입니다”라고 그는 분석했다. 우리 문화의 큰 특징을 이루는 엑스터시, 망아(忘我)의 체험도 굿판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다.

오늘날의 문화 흐름 곳곳에서도 그는 즉흥성, 꾸밈없음, 역동성 등으로 대변되는 조선후기 문화의 특징을 여지없이 짚어낸다.

“텁텁하고 구수한 소리를 좋아하는 한국인은 고운 소리를 좋아하는 일본가요의 특질마저도 우리식으로 변화시켰죠. 피맺힌 듯 거칫한 조용필의 소리가 널리 사랑을 받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가 ‘난장판’으로 대변되는 우리 문화를 무조건 예찬하는 것만은 아니다. 1997년 펴낸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에서 그는 오늘날 문화현상 및 의식 저변에 흐르는 무질서와 후안무치함을 질타했다.

이번 책에서도 그는 ‘어떤 사회에 상층 문화만 존재하면 그 문화는 역동성이 부족해지지만 기층 문화만 존재한다면 방종으로 흐르는 저질 문화가 판을 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상층 문화의 견인차 역할을 했어요.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는 이런 역할을 할만한 상층 문화와 세계관이 위험할 정도로 미약합니다. 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다면, 후손에게 자랑할만한 문화적 유산도 생성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심각한 정신적 사회적 혼란이 초래될 수도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 중국과 중앙아시아에서 현지 문화연구를 진행하면서 이들 문화가 우리 문화 심층부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는데 주력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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