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동원/말로만 규제완화

  • 입력 2002년 2월 22일 18시 28분


“지난해 사업이 좀 된다 싶더니 요즘 세무당국에서 훨씬 까다로운 요건을 내미는 데다 각종 외부기관의 협찬 요청들이 줄을 이어 곤혹스럽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1일 마련한 조찬간담회에 참석했던 한 주류업체 사장은 “한국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고 점잖게 말했다.

그는 “많이 벌면 많이 쓰는 것은 당연하지만 해당 기업의 뜻과 관계없이 지출해야할 데가 너무 많습니다. ‘각종 규제는 곧 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라며 입맛을 다셨다.

“규제완화요? 매년 수십 건의 규제를 없앤다고 발표하지만 잘 뜯어보면 없어졌다는 항목이 슬쩍 다른 항목에 얹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이 자리에 참석한 다른 경영자의 말이다.

기업을 ‘규제와 간섭의 대상’으로 보는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재계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의 한 최고경영자는 “기업경영을 경제논리에 맡기고 간섭을 하지 않겠다는 발상으로 전환하는 것이 가장 강도 높은 규제완화”라며 “최소한 국내에서 마음놓고 뛰는 외국기업과 차별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정산업을 키우라는 식의 정부측의 발상도 문제라는 지적이 말했다.

“재벌의 빅딜정책은 정부가 산업정책에 간섭해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가 아닙니까. 벤처 우대정책도 그렇고요. 제발 그냥 놔두면 좋겠습니다.”(전경련의 한 간부)

물론 기업에도 책임이 없지 않을 것이다. 정부의 한 고위관료는 “그동안 기업부문에서 원칙을 넘어선 행위들이 많아 불가피하게 규제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외국인의 눈엔 한국의 규제가 어떻게 비칠까. 최근 한 세미나에서 랜달 존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담당관은 이렇게 말했다.

“OECD국가 가운데 대기업 규제 관련법률이 있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 정부는 직접적인 규제는 없애고 불공정거래 관행을 개선하는 경쟁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동원기자 경제부 davis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