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근기자의 여의도 이야기]'잔치' 주총이 되려면

  • 입력 2002년 2월 18일 18시 03분


#1. 한 소액주주가 배당이 적은 이유를 경영진에게 끈질기게 묻는다. 그러자 삼삼오오 모여앉은 다른 주주들이 “우”하며 야유를 보낸다. 회사측에서 동원한 ‘총회꾼’들이다. 어떤 이는 “빨리 앉아”하며 고함을 질러대기까지 한다.

#2. 여기저기서 주주들의 질문이 쏟아져도 의장은 회의장에 아무도 없다는 듯 의사봉을 두드리기에 바쁘다. ‘탕 탕 탕.’ 회사측에서 내놓은 안건은 일사천리로 통과된다.

#3. “어떻게 손익계산서 같은 기본 내용도 넣지 않은 주총 자료를 내놓을 수 있나?” 나이 지긋한 한 주주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경영진을 다그친다. “이런 식으로 하려면 뭐하러주총을 하느냐”는 주주의 말에 경영진은 “미처 준비를 못해 죄송하다”며 다음부터는 잘하겠다는 말만 반복한다.

모두 지난해 3월 거래소 상장기업과 코스닥 등록기업의 주주총회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해마다 주총은 열리고 그때마다 이런 장면은 반복된다.

외환위기 이후 소액주주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주주총회를 대하는 회사측의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구태는 여전하다.

외국의 주주총회는 주주와 경영진이 한데 어울리는 ‘축제의 장’으로 여길 정도로 분위기가 다르다. 일부 기업은 퇴직금으로 주식을 지급하기 때문에 주주가 된 전 직장동료들이 모여 회포를 푸는 ‘사우회’ 자리가 되기도 한다.

다행히 지난해부터는 한국에서도 몇몇 기업이 색다른 모습의 주총을 선보여 주총 문화의 선진화에 대한 기대를 갖게 했다.

주총을 기업설명회의 장(場)으로 활용한 회사, 공장으로 주주들을 초청해 회사의 구석구석을 보여준 회사, 경영진과 주주가 원탁에 둘러앉아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눈 회사 등이 눈길을 끌었다.

다시 주총 시즌이 시작됐다. 이제부터라도 주주총회가 제 모습을 찾기를 1000만 투자자들은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회사의 현황을 정확히 살펴보고 장래를 함께 걱정하며, 따질 일은 준엄히 따지고 축하할 일은 축하하는 그런 모습이다.

그러자면 경영진이 우선 본연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경영진은 ‘주인-대리인 이론’에 따르면 어디까지나 대리인 아닌가. 대리인은 주인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할 것이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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