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병종/문화의 나무에 물을 주자

  • 입력 2002년 2월 15일 19시 41분


얼마 전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지는 아시아 지역을 휩쓰는 소위 ‘한류(韓流·Korean Wave)’ 열풍을 소개하면서 한국이 새로운 창작산업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이 신문은 한국의 창작산업이 아시아의 음악, 영화시장에 급속하게 팽창되어 가는 것을 지적하면서 한국이 문화적 제국주의를 구현하고 있다고까지 언급했다고 한다.

이 기사는 한국의 문화산업이 결국엔 최대 잠재시장인 중국을 공략하는 데 있어 서구 제국을 누르게 될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얼마 전 베이징에서 살다온 후배로부터 중국을 휩쓰는 한류 열풍에 대해 다시 들었는데, 그 바람이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었다. 특히 한국의 TV 드라마와 영화의 열광적인 인기는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으니, 워낙 재미있는 데다가 예술성마저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새로운 문화제국에 대한 외국신문의 기사가 결코 과장된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문화창출이 국가경쟁력 열쇠▼

서울에서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들과 겨루고 서양가수들이 한국 음반시장의 20%밖에 차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러한 전망에 대한 신뢰성을 한층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런 기사를 보게 되면서 주변국을 향한 음반이나 영화시장의 무서운 팽창력이 장차 미술이나 공연예술, 나아가 예술 전반으로까지 확산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된다.

언젠가 한 민간기업의 경제연구소에서는 한국영화에서 경영전략을 배우라고까지 기업들에 충고하였다 한다. 여러 가지 열악한 조건들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영화 두뇌들을 통해 새로이 시장가치를 형성해 나가면서 부단히 인프라 확충을 꾀해나가는 한국영화의 비법을 기업경영에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흔히들 금세기는 문화전쟁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들 예상한다. 지나간 세기가 자원과 과학에 의한 국가 간 경쟁체제였다면 앞으로는 고유한 문화창출이 국가 경쟁력의 관건이 되리라는 전망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문화예술의 두뇌를 적잖이 확보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설렘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뒤늦게 그 잠재력이 발견된 것이지만, 어쩌면 문화예술 분야야말로 우리로서는 가장 경쟁력이 강한 분야 중 하나일 것이다. 앞으로 대중문화에서 불고 있는 한류 열풍과 같은 바람이 순수예술 전반으로 확산되어 갈 때 문화제국까지는 몰라도 확실히 우리나라가 동아시아적 전통을 기반으로 한 문화예술의 새로운 강국으로 떠오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러한 역량과 소양을 어떻게 결집시키고 후원하여 세계에 내보낼 수 있는가 하는 방안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 분야의 성장을 두고 범국가적 차원에서까지 후원하지는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사실 정치 경제분야는 차치하고서라도 체육에 쏟는 정성만큼이라도 문화예술에 쏟아 붓고 투자했던가 하는 느낌이다.

물론 문화 예술이란 투자한다고 금방 열매를 맺거나 보상을 받는 분야는 아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물주고 거름주어 정성을 기울일 때 그것이 가져올 부대 효과는 엄청난 것이다. 국민적 정서 함양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거니와 국가이미지 제고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서구에서 활약하고 있는 세계적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 한 사람이 일본국가 이미지에 기여하는 바는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뿌린만큼 거둔다"▼

이 땅에서는 문화나 예술은 특별히 보살펴주지 않아도 질긴 들풀처럼 생명력을 이어오고 꽃을 피워 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문화예술은 밟지만 않는 한 가만두어도 저절로 무성해지는 것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되어 왔던 것이다. 옛 도공들이 빚어낸 수많은 명품들 또한 유별나게 예술과 예술가를 대접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그래서 일견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는 문화예술에 있어서도 제대로 투자하지 않고서는 보다 많은 열매를 얻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바야흐로 이 땅의 들풀처럼 만발한 예술적 천분 위에 물주고 햇빛 쪼여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 곳에서 자라난 우리의 청소년들이 세계적 예술거목들로 속속 자라날 수 있도록 후원해야 할 것이다.

월드컵대회 경기장이 들어선 곳마다 음악당과 미술관도 함께 들어섰다면 하는 아쉬움을 요즘 부쩍 갖게 된다.

김병종 서울대 미대 학장·한국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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