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활/預保-국세청 직원들의 속앓이

  • 입력 2002년 2월 3일 18시 37분


예금보험공사에서 일하는 A씨는 얼마전 겪은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무겁다.

그는 초등학생인 아들로부터 “아빠 회사가 그렇게 나쁜 곳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깜짝 놀라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자 “아빠 회사의 높은 사람이 나쁜 일을 많이 했다고 아이들끼리 수군거린다”는 것이었다.

이형택(李亨澤) 전 예보 전무의 비리가 불거지면서 예보 안에서는 “간부 한 명의 잘못으로 밤낮 없는 고생이 물거품이 돼 버렸됐다”는 탄식과 분노의 목소리가 높다. 중간간부인 B씨는 “공적자금의 관리와 회수업무 등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예보가 부패기관으로 비쳐질까 두렵다”며 허탈해했다.

예보 임직원들은 이씨의 ‘거짓말’에 대해서도 고개를 내젓는다.

이씨는 지난해 9월 국정감사 때 “최근 나와 관련해 추측보도가 많아 유감”이라며 “본건(보물 발굴 사업)과 관련해 내가 어떤 작용을 하거나 이득을 취한 적은 전혀 없으며 떳떳함을 명백히 밝힌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특별검사팀은 이씨의 구속영장에서 ‘피의자는 보물 발굴이라는 허황된 개인적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대통령 친인척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국가 중추기관들을 동원하고 국기(國基)를 어지럽혔다’고 밝혔다.

돌이켜보면 이씨가 99년 3월 예보 전무로 선임된 자체가 일반적 인사관행을 감안할 때 명백히 ‘잘못된 선택’이었다. 정부 당국자는 “당시 이씨의 내정사실을 이례적으로장관이 기자들에게 발표하고 일일이 협조를 요청했을 정도”라고 전했다.

‘조세정의’와 ‘개혁’의 화신이라도 되는 양 행세했던 안정남(安正男) 전 국세청장의 비리의혹을 지켜보는 국세청 공무원들도 착잡하기는 마찬가지다. 전형적인 ‘구악(舊惡)’인 안씨는 ‘애국가’와 ‘4·19정신’까지 더럽히면서 국세청을 ‘권력의 시녀’로 추락시켰다.따지고 보면

예보와 국세청 직원들의 ‘속앓이’는 권력의 오만과 욕심이 빚어낸 우리 시대의 슬픈 초상화라고 할 수 있다. ‘선의의 피해자들’에 대해 권력과 이에 영합한 일부 세력은 지금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권순활 경제부 기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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