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신규아파트를 실수요자 손에"…투기판 청약 보완비상

  • 입력 2002년 1월 27일 17시 44분


새로 짓는 아파트 분양시장에서 집 없는 서민들이 소외되면서 청약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80년대 초에 기본 틀이 마련된 청약저축 제도의 취지는 내 집이 없는 ‘무주택 세대주’가 청약통장에 일정액을 저축하면 일정기간이 지난 후 ‘1순위 자격’을 주고 1순위 자격자들만이 신규 분양 아파트에 청약하도록 한 것.

그러나 청약저축 및 청약부금 1순위 자격자가 이미 100만명을 넘어서고 분양권 전매가 허용되면서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기꾼의 장으로 변해버린 것이 최근의 현실이다.

주택 실수요자보다는 일명 ‘떴다방’으로 불리는 뜨내기 중개업소 업자들이 무더기로 청약을 신청, 분양 물량을 확보한 뒤 웃돈(프리미엄)을 받고 되파는 일이 일상화됐다.

‘떴다방’들은 돈을 주고 청약통장을 사서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무더기로 청약하는 사례도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순수한 무주택자가 당첨돼 내 집을 마련하기는 어려운 일이 됐다. 아파트값 폭등의 진원지인 서울 강남지역에 대한 대규모 세무조사 방침이 발표된 8일 실시된 서울시 12차 동시분양 청약에서도 2105가구 공급에 9만1358명이 신청, 무려 43.4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동작구 상도동 삼성래미안 23평형은 111가구 공급에 1만6700명이 몰려 경쟁률이 151 대 1에 달했다.

지난해 2·4분기 이후에는 분양가격도 급상승세를 타고 있어 신규 분양 실수요자들은 ‘높은 분양가에 높은 프리미엄’을 줘야 새 집을 사는 ‘이중고(二重苦)’를 겪는 실정이다.

더욱이 3월 27일이면 ‘1인 1청약통장’ 세대(世代)가 대거 청약시장에 참가해 신규 분양 아파트의 청약경쟁률은 엄청나게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1인 1청약통장’ 세대란 무주택자 여부에 관계없이 20세 이상이면 누구나 한 개의 청약저축이나 청약부금 통장을 가질 수 있도록 한 조치에 따라 올해 3월말이면 1순위 자격을 얻는 사람들을 말한다.

청약저축과 청약부금 가입자에 대한 자격이 완화되면서 99년말 160만5962명에 불과하던 청약저축 청약예금 청약부금 등의 가입자 수는 2000년말 379만1328명으로 늘었다. 작년에는 청약경쟁률이 지나치게 높아 당첨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약간 줄어든 상태.

일부에서는 분양가 자율화나 분양권 전매를 제한하는 등의 특단의 대책이 다시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주택소유 여부에 관계없이 자격이 주어지는 청약제도를 고쳐 배수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 실정이다.

그러나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분양권 전매제한은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나는데다 전매 허용으로 재테크 차원에서 아파트를 구입한 투자자를 범법자로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부동산 시장 자체가 급속히 냉각되고 건설업체의 부실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해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아직은 많다.

채산성 악화를 우려한 주택건설업체들이 아파트 분양을 줄이면 주택공급 부족에 따라 집값이 더 올라 부작용만 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주택 실수요자에게 신규 분양 아파트가 돌아가도록 하면서 투기를 막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실토했다.

주택산업연구원 장성수 박사는 “민영주택을 청약할 때 청약 증거금의 형태로 분양가격의 10%를 예치토록 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청약에서 떨어진 사람에게는 예치된 금액에 대해서 정기예금 금리를 더해 되돌려주고 당첨자에게는 계약금으로 전환토록 한다는 것.

장박사는 “이같이 간단하게나마 실수요자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면 ‘투기적 수요’가 줄어들고 실수요자들의 부담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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