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세계관의 변화와 동감의 사회학'

  • 입력 2002년 1월 25일 17시 59분


◇세계관의 변화와 동감의 사회학/윤원근 지음/528쪽 2만 4000원 문예출판사

영어 표현에 ‘tea and sympathy’란 말이 있다. 차를 마시면서 차분히 이야기하는 것을 뜻한다. 빈센트 미넬리의 유명한 영화 제목이기도 한 이 표현은 공감 또는 동감(sympathy)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는 말이다.

동감이란 대상에의 일방적인 몰입이 아니라 대상과의 차별성을 인정하면서도 심리적인 동일성을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동감은 철학사적으로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에 의해 주목받았지만, 사회학에서는 그렇게 활발히 논의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이유는 동감의 철학적 의미가 과학을 지향하는 사회학에서는 아무래도 불편할 수밖에 없다는 데 기인한다. 하지만 인간 사회생활에서 동감이 갖는 중요성은 결코 작지 않으며, 다양성과 복합성이 고도로 증대한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동감의 사회학’을 간판으로 내건 이 책은 바로 이런 불만을 해소해 주고 있는 책이다. ‘지식인 사회의 혼란 해소를 위한 새로운 모색’이란 부제를 단 이 책이 겨냥하는 목표는 혼돈스러운 현대사회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동감의 사회학’을 모색하는 데 있다.

동감의 사회학의 출발점은 ‘신비적 세계관’과 ‘합리적 세계관’의 구분이다. 저자는 근대 사회학의 기초를 마련한 칼 마르크스, 에밀 뒤르켐, 막스 베버의 사회학이 신비적 세계관에 기반해 있으며, 결과적으로 사회학의 기본 과제인 ‘질서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신비적 세계관은 ‘지배와 투쟁의 세계관’이기 때문에 그것이 지배하는 사회는 결국 구조적인 갈등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신비적 세계관에 대한 저자의 대안이 합리적 세계관이다. 그것은 균형의 질서원리를 이상으로 하여 서로 경쟁하며 개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세계관이다. 저자에 따르면 애덤 스미스가 제시하는 인간의 자연스런 동감은 사회질서의 기초인 도덕의 일반원칙을 제공함으로써 합리적 세계관의 중핵을 이룬다.

이런 논리에 입각해 저자는 현재 우리사회가 직면한 위기의 근본 원인도 우리 사고를 지배하는 신비적 세계관에 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동감에 기반한 합리적 세계관을 그 처방전으로 제시한다.

이 책의 장점은 고전 사회학 대가들의 사상을 일관된 논리로 해부하고 새로운 규범적 원리를 탐색하는 데 있다. 저자는 동감이 갖는 사회학적 의미를 재발견하고 이를 사회학 이론으로 재구성하는 데 나름대로 성공하고 있다.

특히 세계화와 정보화가 빠른 속도도 진행되는 현대사회에서 타자와의 동감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는 주장은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물론 세계사회가 직면한 위기는 제도와 규범의 이중적 위기라 할 수 있다. 기존 사회학 담론이 규범적 영역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면 동감의 사회학은 제도분석을 경시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남는다. 사회학 이론 영역에서 새로운 토론과 논쟁을 자극하는 책이다.

김호기(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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