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왜 국제경제 '외톨이' 됐나

  • 입력 2002년 1월 15일 18시 46분


중국이 작년에 동남아국가연합(ASEAN)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데 이어 엊그제 일본이 싱가포르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다는 소식은 우리에게 고립감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아직 어느 나라와도 자유무역협정을 맺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무역협정 추진을 선언한 지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정부는 ‘햇볕정책’에 매달리고 ‘비리 게이트’에 빠져 세월을 허송했고 그 사이에 경쟁관계에 있는 주변국들은 발빠르게 실속을 차렸다.

세상은 놀라운 속도로 변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이 단일 화폐를 쓰기 시작했고 세계 최대의 국내 시장을 갖고 있는 미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라는 거대 블록도 모자라 북남미의 34개국이 참가하는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협상을 2005년까지 끝내려고 서두르고 있다.

일본과 싱가포르의 협정 체결은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온 세계경제 블록화의 파도가 동북아시아 지역에도 본격적으로 밀려 왔음을 알려주는 사건이다. 세계 곳곳에서 이미 두 나라 간, 또는 여러 나라 간에 체결된 자유무역협정은 120여건에 이른다. 우리와 직접적인 경쟁관계에 있는 일본과 중국은 불과 3년 전만 해도 어떤 자유무역협정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 양국은 동아시아 지역경제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작년부터 잇달아 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98년 말부터 남미의 칠레와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해 왔다. 그 후 몇 차례 관세장벽 철폐 협상이 있었으나 양국이 농산물 시장개방 등을 둘러싸고 이견을 보여 별 진전이 없는 상태이다. 대상 국가를 잘못 선택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정부부처 내에서조차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외교통상교섭본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국익을 위한 길이라면 농민들이 반대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설득했어야 옳지 않겠는가.

김대중 대통령은 출범 초기에 ‘외교 대통령’을 자임하고 나섰지만 지금 국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세계경제의 블록화 추세에서 우리는 외톨이 신세가 되어가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해외 세일즈 외교에 나서는 일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외치(外治)의 기반을 다지는 일이 더 중요하다.

김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인 올해는 아무래도 내치(內治)의 과제가 많다. 앞으로 비리 게이트를 파헤쳐 부패의 뿌리를 뽑아야 하고 월드컵과 선거 등 국내 행사가 잇달아 예정되어 있어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으나 세계는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세계경제의 흐름에서 한번 뒤지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한 세기 전 세계를 제대로 보지 못해 나라 잃는 설움을 겪어야 했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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