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조랑말 사회는 '아줌마 천하'

  • 입력 2002년 1월 2일 18시 44분


제주도 조랑말 사회에서는 나이 많은 아줌마가 최고.

말띠 해를 맞이해 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유일의 재래마인 제주마(濟州馬)에 대한 새로운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연구들에 따르면 제주마 집단은 나이 많은 암말이 주도권을 쥔 모계 사회로, 수말은 1년의 대부분을 집단의 일개 구성원으로만 지낸다.

한국마연구회 회장인 제주대 강민수 교수(동물자원과학과)는 지난해 제주마 집단의 번식을 분석한 결과 무리를 이끄는 수말의 역할이 발정과 번식기에만 제한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발정기인 3∼6월에는 한 마리의 수말이 여러 암말들로 구성된 무리를 흐트러지지 않게 몰거나 무리에 접근하는 다른 말들을 쫓아버리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한다. 그러나 이 시기가 지나면 무리가 흩어지기 시작해 9월이 되면 수컷은 전체 집단의 일개 구성원으로 전락했다.

강 교수는 “발정기에도 수컷이 무리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암말들이 다른 수컷에 관심을 두지 못하게 무리 뒤를 따라가며 막는 꼴”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비해 암말은 무리의 이동시간이나 경로를 결정하는 실제적인 지도자란 것.

제주마의 모계사회에서는 나이가 많은 ‘아줌마’일수록 서열이 높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노정래 박사는 최근 ‘제주 조랑말의 사회적 서열과 번식행동’이라는 박사논문에서 나이가 많은 어미들의 서열이 더 높으며 이런 경향은 암컷 새끼를 선택적으로 낳고 기르는 것으로 후대에 전달된다고 밝혔다.

노 박사는 1998년부터 2년 동안 제주도 축산진흥원에서 제주마 집단을 관찰한 결과 젊은 어미들일수록 서열을 다투는 싸움을 자주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에 따르면 다른 말들의 공격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는 행동은 나이에 상관없이 동일했지만 이 과정에서 젊은 어미가 나이든 어미보다 공격을 더 많이 받았다. 새끼들끼리 싸울 때도 나이 많은 어미일수록 자기 새끼를 더 많이 도와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1987년부터 2000년까지 태어난 491마리의 새끼와 그 어미들을 조사한 결과 암수의 비가 전체적으로는 비슷했지만 서열이 높은 어미는 암컷을, 낮은 어미는 수컷을 더 많이 낳아 모계 서열이 대를 이어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 박사는 “서열이 높은 어미는 새끼를 키울 때에도 수컷보다 암컷 새끼에게 더 오래 젖을 주는 차별까지 한다”며 “이는 모계사회에서는 서열이 암컷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열이 낮은 어미는 반대로 수컷을 낳아 가능한 많은 암컷과 교미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전략을 구사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

토종 제주마는 외국산 경주마인 서러브레드종과 혈통이 섞여 구별이 쉽지 않다. 밀양대 조병욱 교수(동물자원학과)는 지난해부터 DNA 분석으로 제주마의 순수 혈통을 찾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순수 혈통 찾기는 말의 DNA를 분석해 서러브레드종의 표지 DNA가 나타나는지, 아니면 제주마에 특이한 표지 DNA를 보이는지 추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조 교수는 “DNA 검사는 사람의 친자확인과 같은 방법으로 제주마의 가계도 확립에도 이용되고 있다”면서 “현재 제주마에 특이한 표지 DNA 여럿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영완 동아사이언스기자

puse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