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질도 한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피가 섞인 설사를 해 적리(赤痢)라고도 불린 이질은 한 사람만 걸리면 순식간에 마을 전체가 재앙을 당하기 일쑤였다. 오죽 전염성이 강하면 ‘얼굴만 봐도 옮는다’고 했을까. 같은 수인성 전염병인 콜레라의 경우 병원균 10만마리 이상이 인체에 들어올 때 발병하는데 이질은 5마리만 있으면 충분하다니 이 말이 실감이 난다. 환자 손만 잡아도 전염된다는 말은 거짓말 같지만 사실이다. 그토록 무섭던 이질도 항생제가 발달하면서 기세가 꺾였다.
▷그래서 거의 잊어버렸다 싶던 이질이 2년 전부터 다시 극성을 부린다. 96년 9명, 97년 11명에 그쳤던 환자가 99년에는 1700여명으로 급증했고 지난해엔 2500명이 넘었다. 올 상반기에도 제주도에서 기승을 부려 휴교령까지 내리더니 이달 들어 서울과 강원 춘천시에서 다시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환자들이 모두 한 도시락 전문업체가 만든 김밥을 먹었고 그 업체 종업원 한 명이 최근 장염 증세로 치료받았다는 얘기이면 전염 루트는 말 안 해도 뻔하다.
▷이질과 콜레라는 후진국형 질병으로 불린다. 불결한 환경, 비위생적 시설이 ‘온상’이기 때문이다. 손만 잘 씻어도 안 걸린다는 병이 이질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이질 창궐의 ‘주범’이 학교 급식이라니 어이가 없다. 종업원들이 위생에 조금만 신경 쓰면 해결될 일을 방심해 화(禍)를 자초한 것이 아닌가. 문제는 내년 월드컵이다. 세계의 눈이 온통 우리나라에 쏠려 있는 판에 덜컥 이질이나 콜레라가 돌면 이런 망신이 없다. 약 좋다는 말만 할 게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예방대책을 세워 병을 미리 막는 게 상책이다.
<최화경논설위원>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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