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노벨상 1년, 뒷걸음친 햇볕정책

  • 입력 2001년 12월 6일 18시 41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어제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10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연설했다. 김 대통령이 1년 전 그 곳에서 노벨평화상을 받았을 때와 지금의 상황을 비교해 보는 우리의 심경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1년 전 김 대통령은 수상 연설에서 “나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민족의 안전과 화해 협력을 염원하는 입장에서 상당한 수준의 합의를 도출해내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이 지나도록 남북관계는 더 이상의 진전이 없다. 오히려 퇴보와 구태(舊態)의 재연(再演)이 있었을 뿐이다. 작년 남북 정상회담 때의 감격과 기대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허탈감과 북에 대한 배신감만 자리잡고 있다.

김 대통령은 어제 연설에서도 ‘햇볕정책만이 유일한 대안이고 남북한은 물론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전에 기여하는 윈-윈 정책’이라며 1년 전과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김 대통령은 또 9월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10가지 합의를 이룬 것에 대해 “참으로 자랑스러운 민족적 성취”라고 자찬했다.

우리는 김 대통령의 이러한 대북(對北) 인식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햇볕정책이 유일한 대안이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측을 대하는 전술과 수단까지 항상 똑같아야 한다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북측이 억지 고집을 피우고 제멋대로 나올 때에는 ‘채찍’도 꺼내 들 줄 알아야 하건만 지금까지 햇볕정책은 채찍은 없이 시종일관 ‘당근’만 내민 격이었다. 9월 장관급회담에서 이룬 ‘10가지 합의’란 것도 우리가 북측의 술수에 말려들어 조급한 속내만 드러낸 것이었다. 10가지 합의 중 진전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실상이 그러할진대 그것이 밖에 나가 자랑할 거리인가.

김 대통령의 ‘일관된’ 대북 인식에서 비롯되는 문제는 상상외로 클 수 있다. ‘일단 퍼주고 보자’는 정부의 태도로 인해 북측이 억지 주장과 요구를 할 빌미가 된다는 점이 그렇고, 대통령이 남북관계의 현실을 올바로 읽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또한 그렇다. 대통령 보좌진이 ‘대통령 생각과는 다른’ 보고를 올리기 어렵게 만든다는 걱정도 있다. 우리는 얼마 전 국가정보원 고위 간부가 국회에서 김정일 답방에 대해 ‘실현될 것으로 본다’고 답변한 예에서 그런 징후를 감지한다.

지금은 나라 밖에서 햇볕정책을 화려하게 선전하는 일에 신경 쓰기보다는 이제까지 해온 햇볕정책의 내용과 성과를 재검토하고 반성할 때다. 그 첫 단추가 바로 김 대통령의 대북 인식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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