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은성씨 뒤에는 또 없나’

  • 입력 2001년 12월 3일 18시 22분


김은성(金銀星)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이 ‘진승현게이트’와 ‘정현준게이트’ 수사 당시 자신의 부하 직원에게 1000만원까지 주며 검찰 수사 상황을 보고토록 했다는 보도는 충격적이다. 어느 국가기관보다 엄격한 근무 기강과 조직 윤리가 확립되어 있어야 할 국정원이 몇 몇 인사들에게 완전히 ‘농락’당한 모습이다.

국정원의 제2인자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이처럼 수사 상황을 보고토록 했으니 검찰이 제대로 수사나 할 수 있었겠는가. 또 개인적으로 부하 직원에게 1000만원까지 주며 지시를 해야 할 상황이었다면 드러나지 않은 권력 내부 고위인사와 조직간의 청탁과 압력은 어떠했겠는가. 당시 수사 검사들이 수사 강행을 주장하다 검찰 지휘부와 갈등을 겪고 사표 의사까지 밝혔다는 뒷얘기들이 실감있게 들린다. 그런 과정을 통해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했으니 권력기관의 ‘놀음’에 국민만 속은 셈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국가의 안위문제를 직접 다루는 최고의 정보기관이 무슨 사조직인 것처럼 몇몇 인사들에 의해 끌려 다녔다는 데 있다. ‘진게이트’와 ‘정게이트’에 연루된 것으로 밝혀진 국정원 출신 인사만 하더라도 김 전2차장을 비롯해 김형윤 전 경제단장, 정성홍 전 경제과장, 김재환 전 MCI코리아 회장(국정원 과장 출신) 등 4명이다. 국정원의 주요 인사들이 정보기관의 권력을 이용해 젊은 사업가의 비리를 감싸주는 ‘보호막’ 역할을 한 것이다.

김 전 차장이 진씨와 정씨를 보호하기 위해 이처럼 조직을 ‘농락’하고 있을 때 국정원의 최고 책임자인 원장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임동원(林東源) 대통령외교안보특별보좌역은 남북관계 업무에만 전념했다고는 하나 이번 사건의 규모나 내용을 보면 조직의 최고 책임자가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미 진씨가 작년 4·13 총선 당시 여야 의원들에게 선거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도 불거져 나왔다. 국정원의 제2인자 격인 김 전 차장이 단순히 진씨나 정씨를 봐주기 위해 그런 일을 했겠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그래서 김 전 차장의 비리는 ‘빙산의 일각’이 아니냐는 얘기가 들리는 마당이다.

그동안 국정원은 본연의 임무보다 ‘잿밥’에 더 신경을 쓴 일부 인사들 때문에 조직 자체가 상당히 타격을 받은 게 사실이다. 국정원이 제대로 자리잡기 위해서도 김 전 차장 일은 철저히 수사해 그 전모를 명백히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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